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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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20.01.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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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창선도 출신 김봉군과 양왕용 교수의 문단 이력 읽기(5)
김봉군 교수 등 여덟 분의 합동 저서 ‘도전하는 삶’에 실린 김봉군편 <사랑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볼까 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에 심취한 사람들은 불쌍한 고향 사람들을 구하여야겠다는 그 같은 나의 노력을 콤플렉스 등 정신분석학 용어를 동원해 가며 무엇이라고 분석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분석은 나의 그런 행위를 설명하는 정확한 논거라고 할 수 없는 까닭이 있다. 그것은 우리 어머니의 일생에 대한 검토를 프로이트 심리학은 올바르게 해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물만으로 말하면, 나는 부모의 유산 한 푼 물려받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 물려주신 부모님의 정신의 유산은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소중하다. 나는 세상살이를 하다 몹시 지치거나 혹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 때 어머니를 생각하면 새로운 용기와 기쁨이 샘솟아 올랐다. 어린 시절 나에게 어머니는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찬란한 별이었다. 대다수의 아들, 딸들에게 어머니는 귀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사뭇 특별한 분이셨다. 어머니의 행적 중 몇 장면만 회상해 보기로 한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날이었다. 학교 공부가 끝나고 일찍 귀가하게 된 나는 대문 안에 들어서며 참으로 신기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실성한 한 동네 아주머니의 머리를 감겨 곱게 빗질하고 계셨다. 그 아주머니는 다소곳이 어머니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장 안에 고이 개어 두셨던 새 옷을 내어 입히셨다. 그리고 따뜻한 점심밥을 차려 주셨다. 아주머니는 밥과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리고 바느질거리를 달라하여 감침질을 하다가 잠을 청했다. 잠든 그녀의 얼굴은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그 아주머니는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실성하고 만 여인이었다.”

“아이들은 미친 여인이라고 놀려대며 그녀에게 돌멩이질을 했다. 그토록 순박한 고향 아이들이 왜 육신의 장애자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가혹하게 대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 여인을 학대했다. 그녀는 상여막이나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잠을 자야 했고 사람들을 보면 격렬하게 반격해 왔다. 그런 여인이 어머니 앞에서만은 마치 어린 양처럼 온유해지는 것이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였다.”

“그 신비의 열쇠는 물론 사랑이었다. 어머니는 온통 사랑의 덩어리셨다. 그 적빈의 궁핍 속에서도 배고파서 찾아드는 수많은 길손과 걸인들을 그냥 보내시는 법이 없었다. 시장 갔다 오시는 길에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을 만나시면 우리 6남매 몫으로 사신 엿이며 사탕을 그애들에게 주시곤 빈손으로 돌아오실 때가 많았다. 이 경우를 두고 프로이트 심리학자들은 승화니 뭐니 하는 정신분석학 용어를 써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폄하할 것이다. 그건 당치 않은 일이다. 중학교때의 일이다. 풋보리바심으로 높으나 높은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흉년이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학교 공부가 끝나자 마자 점심이 그리워 20리 산길을 뜀박질로 넘어 집으로 왔다. 사립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 점심 차려 주시라는 애절한 요청이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병환자 두 사람이 와서 네 밥을 주었다. 저녁 일찍 먹도록 하자.’ 이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먹을 점심밥을 하필이면 ‘문둥이’를 주었느냐고 불평을 했다. 나에게는 여간해서 꾸중을 아니하시던 어머니는 정색을 하시더니 불호령이 떨어졌다. 뒤뜰 대밭에 가서 회초리를 꺾어 오라 하셨다. 어머니는 회초리로 방바닥을 치시며 초달을 대신하셨다. ‘네 몇끼 굶었느냐?’ ‘한 끼 굶었습니다’ ‘그 나환자는 이틀을 굶었다더라. 그런 데도 할 말이 있느냐?’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나는 어머니 손을 붙잡고 아프게 울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어머니 꾸중을 듣지 않았고 음식 투정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산다. 내가 좋은 음식상을 받고 앉았을 때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굶주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긴 기도를 드리는 것은 그 간곡한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다.”

김교수의 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전에 동네 젊은이 치고 어머니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어느 아저씨 한 분은 정도가 심하다 할 정도로 평생토록 어머니를 섬겼다. 그 이유를 김교수는 알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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