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의 경제이야기] 유럽 최대 기업 왕국 발렌베리 가문
[김흥길의 경제이야기] 유럽 최대 기업 왕국 발렌베리 가문
  • 경남일보
  • 승인 2020.02.0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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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는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해야 한다./후계자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후계자는 부모의 도움 없이 세계적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서 실무 경험과 금융 흐름을 익혀야 한다./후계자 평가는 10년이 넘게 걸리며,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을 뽑는다. 경영 세습의 경우 적합한 후계자가 있을 경우에 한하지만, 앞의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후계자가 될 수 있는 유럽 최대의 기업왕국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Wallenberg family) 기업집단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역사는 1856년 오스카 발렌베리가 스톡홀름 엔실다 은행(SEB)을 창업하면서 시작되었다. 5대 째 세습경영이 이어지고 있지만 발렌베리 가문은 여전히 스웨덴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금융업 외에 항공, 산업공구, 제지, 의료기, 등 여러 산업에 진출, 세계적인 기업들을 키워냈다.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ABB(Asea Brown Boveri - 중전기기, 발전설비 부문의 세계적인 다국적기업), 스카니아, 사브, 아스트라제네카 등이 대표적인 발렌베리 가문의 기업들이다. 이 같은 유명 기업들을 기반으로 발렌베리 가는 유럽 최대 기업 왕국을 일궈낸 것이다. 현재 발렌베리 가문이 가지고 있는 기업들의 가치는 무려 340조가 넘는다. 이는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는 규모이다. 발렌베리 소속 기업들의 국내외 매출은 약 1000억 달러로, 스웨덴 전체 GDP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베리 기업집단에 속한 자회사들은 독립경영을 보장하고 있는 편이다. 독립경영을 위해 발렌베리가는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들에게 자회사의 경영권을 일임한다. 대신에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통해 자회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할 뿐이다. 이 인베스터는 발렌베리 가문의 여러 재단이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관리 시스템에 따라 발렌베리가문 기업들의 경영수익은 배당을 통해 인베스터를 거쳐 각 재단으로 들어가게 돼 있다. 발렌베리 가문의 부가 인베스터의 주요 주주인 재단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발렌베리 가문 오너들의 재산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발렌베리가의 대부로 인베스터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창업주의 증손자인 피터 발렌베리 1세의 재산은 199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의 아들인 인베스터의 회장 야콥 발렌베리도 52억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오너들이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는데 열을 올리지 않는 것은 ‘소유권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라는 발렌베리 가문의 아름다운 전통의 맥을 160년째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는 발렌베리 가문의 원칙이 경영이념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영이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가문의 부를 개인적으로 누리기보다는 이를 잘 관리하고 증대시키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강조한다. 그래서 자녀를 후계자로 승계시키기 전에 엄격한 기준과 조건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재단들에 모인 수익금은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는 가문의 방침에 따라 각종 사회공헌 활동에 쓰인다. 발렌베리 가문은 노벨재단보다 훨씬 큰 규모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스웨덴의 첨단 과학기술 발전을 지원해오고 있다. 크누트앤앨리스 발렌베리재단,마리앤느앤마쿠스 발렌베리재단,마쿠스앤아말리아 발렌베리추모재단 등은 과학기술 연구비를 집중 지원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이런 사회 환원과 공헌을 높이 평가하여 스웨덴 국민들은 발렌베리 오너 일가가 의결권을 많이 갖는 대신, 주식배당 등 경제적 이익은 제한하는 이른바 ‘차등의결권’을 통해 가문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것을 인정해주고 있다. 발렌베리가 재단들이 인베스터의 지분 21%를 갖고 있지만 의결권은 45.2%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차등의결권 덕분이다. 발렌베리 가문 기업집단은 5대째 세습경영을 하고 있지만 스웨덴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삼성 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그토록 닮고 싶어 했다는 이유를 알만 하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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