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7)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497)
  • 경남일보
  • 승인 2020.02.0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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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창선도 출신 김봉군과 양왕용 교수의 문단 이력 읽기(6)
김봉군 교수는 ‘그리운 작가 영원한 명작’(한국문인협회 편)에 평론 <위대한 정신성을 추구한 큰 시인>(구상론)을 싣고 있다. 이 원고는 2008년 한국문협이 근대문학 100주년 기념으로 작고문인을 위한 <작품 토론회>에서 쓴 것이다. 이 토론회에는 이광수, 영상섭, 채만식, 신석정, 박화성, 피천득, 유치진, 유치환, 황순원, 윤석중, 김유정, 김동리, 김현승, 서정주,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구상, 김춘수 등이 거론이 되었다.

이 중 김교수는 구상 시인을 맡아 발표했는데 이 구상 시인은 진주 개천예술제 창시자 설창수 시인과 의형제를 맺고 오랜 동안 개천예술제 때에는 진주를 어김없이 방문하고 여러가지 일화를 남겼다.

구상론은 서론, 문학적 생애, 특유의 문학관, 구상 시의 전개양상, 작은 끝맺음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문학적 생애를 들여다 보자.

“구상은 1919년 9월 16일 서울 이화동에서 궁내부 관리였던 부친(구종진)과 동양고전과 서도에 능했던 모친(이정자) 사이에서 태중 신자로 출생했다. 그후 4살 되던 해 함경남도 원산 교외 문천군 문천면 덕원리 쪽으로 이주했다. 부친이 베네딕도 수도원의 가톨릭 포교사로 가서 3개의 가톨릭 학원을 세우게 된 까닭이다. 구상 시인의 유년기 체험 가운데 놓쳐서 안 될 부분은 원산 앞바다로 흘러가는 적전강에 대한 상념이라 하겠다. 이는 뒷날 낙동강, 한강 체험과 함께 구상 시학의 정수를 이루는 중요한 대목이다.

구상 시인의 청소년기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가톨릭 신부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일반 중학교로 옮겼으나 퇴학하고 만 것부터가 그랬다. 당시 이른바 ‘불량선인’들과 어울려 유치장 신세를 지고 ‘주의자’가 되어 버림받고 노동꾼 일꾼 노릇도 하는 등 방황을 일삼다가 일본으로 밀항하여 니혼대학 종교과에 들어갔다. 대학을 마칠 동안 많은 사상적 편력을 하였다. 니체의 초인의 성을 오르는 짜라 투스트라의 충격을 받아 ‘신의 장례식’을 치르고 범신론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토속신에 심취하며 노장사상과 ‘법화경’의 무상관에 흐느끼기도 하였다.

이같은 사상의 파란을 거치며 시인은 마침내 프랑스의 사상가 가브리엘 마르셀, 쟝 기통, 자크 마리탱과 만나 인간 실존의 유신론적 인식에 눈을 떴다. 시인이 탐독하고 존중한 프랑스 소설 ‘델즈 데케루’(프랑수아 모리악), ‘악마의 태양 아래서’(조르주 베르나노스), 영국소설 ‘사건의 핵심’(그레미엄 그린)에서 창작의 주요 계기를 포착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알려진 구상 시인의 경우 1947년 2월 월남할 때 마지막 보신 모친과 공산당에 처형되었을 친형 구대준 신부의 모습을 그리며 2004년 5월 11일 선종했다. 시인의 개인사적 사건 중 가장 참담한 것은 두 아드님의 이른 죽음, 참척의 비극이다. 돌이켜 보면 시인의 개인적 역사적 삶 모두가 파란만장 그대로였다. 일생 폐결핵과 천식, 참척의 고통, 사회 역사적 부조리에 맞서 분투했으며 시인의 묘소는 경기도 안성 천주공원묘지이다. 유족으로 소설가인 따님 구자명과 사위 김의규 교수, 손녀 향나, 외손녀 향지양이 있다.

“시인의 시집에는 ‘구상’, ‘초토의 시’, ‘말씀의 실상’,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 ‘개똥밭’, ‘구상시선집’, ‘홀로와 더불어’ 등이 있다. 1986년 프랑스어 번역시집 ‘타버린 땅’, 영역시집 ‘신령한 새싹’, 독일어시집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스웨덴어 시집 ‘영원한 삶’, 일본어와 이탈리아어 시집 등이 있다. 어떤 시인의 증언에 따르면 구상 시인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거의 확정되었는데 그해 노벨 평화상과 겹쳐 좌절되었다는 숨은 이야기도 있다.”

구상 시인의 문학관과 시는 특이하다. “우리의 근현대시를 통털어 전통시, 순수시, 모더니즘 시, 리얼리즘시의 네 갈래 흐름으로 가를 때 구 상의 시는 그 어느 흐름에도 합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 네 흐름을 초극한 독특한 좌표에 놓인다.

시인은 1974년 3월 20일 서울 YMCA 강당에서 있은 문학사상사 주최 강연에서 시와 언어,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심성, 시의 본질과 기능 등에 관한 견해를 피력한 바가 있다. 시인은 언어, 특히 시의 언어가 맡은 본질적 소통의 기능을 강조했다. 말에다 생명을 부어 소생시키고 그 기능을 확대시키고 발전시킴으로서 인간 사회의 유대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고 힘차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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