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우에노공원 박사王仁상
[경일칼럼]우에노공원 박사王仁상
  • 경남일보
  • 승인 2020.02.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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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우에노공원 입구에서 낮은 언덕을 오르면 기단 위에 우람한 남자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굵은 목, 잠옷을 입고 왼손에 칼을 쥐고 오른손은 개 목줄을 치켜들고 있는데 두 귀를 세운 개는 금방 달려 나갈 자세이다. 장딴지를 드러내고 조리를 신었다. 잠옷 차림에 개를 몰고 산책을 하면서 칼을 차야 하는 나라인가 으스스하다.

동상 주인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사이고 다카모리. 왕정복고를 실현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본거지 에도성 무혈입성을 성사시켰고, 무력으로 조선을 정벌하겠다고 주장한 정한론(征韓論)자이다.

고개 돌려서 조금 걸어가자 의관을 정제하고 의자에 앉은 청동부조상이 있다. 눈에 익은 관모를 쓰고 수염은 알맞게 길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저고리를 입었다. 손을 소매 속에 넣었고 저고리 끈은 나비모양으로 매었다. 신은 발등을 덮었고 발은 받침대에 나란히 얹었다. 하단에 안내문이 있다.

박사왕인은 4세기말 대한민국 전라남도 영암에서 탄생하였다고 전해진다.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응신천황의 초청을 받아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황태자의 사부가 되어 충신효제를 가르쳤으며 아스카문화를 꽃피우게 한 학자로서 공자에 비유되는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옆의 비석은 1940년대 왕인박사헌창회가 세운 박사왕인(博士王仁)비이다.

국내에서 책으로 알아왔던 고사기와 일본서기라는 단어를 일본에서 보게 되어 긴장되었다. 작가 최인호의 역사소설 ‘잃어버린 왕국’을 보고 안만려라는 인물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리라.

황산벌 5000 결사대 최후의 전사자 다신부를 아버지, 계백의 질녀 온사녀를 어머니로 백제 멸망을 한꺼번에 맞닥뜨리고 태어난 아이, 그 이름은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편찬한 안만려(安萬侶)이다. 훗날 태조신이라는 관명에 따라 태안만려로 불리기도 한다.

663년 백강 전투에서 패퇴하는 왜선에 수만의 백제 유민들 가운데 사택지적비문을 쓴 사택지적의 아들 사택소명,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던 산상억량, 안만려도 함께 타고 있었다. 온사녀는 산상억량의 모에게 아들을 부탁하며 죽으니 수장되었다.

안만려는 작은 아버지 다품치 양아들로 들어갔다. 배위에서 숨을 거둔 어머니를 평생토록 그리워하여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푸른 파도와 바다, 눈부시게 파도의 포말 속에 부서지던 일광, 얼굴을 스치던 바람의 손길 같은 영상을 떠올리곤 하였다.

사기를 편찬한다면 마음속에 숨어있는 어머니의 고향을 역사 속에 함께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기를 편찬하기로 결심하고, 비조사로 출가하여 절의 서고에 있는 각종 고기와 제기, 역사책을 섭렵하여 역사에 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당대 제일이 된다.

712년 1월 29일, 마침내 일본 최고의 역사서 고사기를 완성했다. 그는 서문의 말미에 정5위상훈5등 태조신 안만려근상(正五位上勳五等 太祖臣 安萬侶謹上)으로 기록했다.

안만려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사기 속에서 고향을 한국(韓國)으로 표기하였다. 韓國은 아름답고 큰 나라를 말할 때 사용되는 낱말이다.

사인친왕은 일본서기 편찬 명을 받고 안만려를 동참시키고자 찾아온다. 꽃잎이 떠내려가는 강에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옆에 앉으며, 사인친왕 “그대는 고기를 낚고, 나는 그대를 낚으러 나왔네.”

태안만려 “강물을 보러 왔는데 흘러가는 물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인친왕 “그럼 무엇을 보았는가?”

태안만려 “꽃잎은 지지만 꽃은 영원하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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