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요리조리 같이 먹고 함께 살기
[경일춘추]요리조리 같이 먹고 함께 살기
  • 경남일보
  • 승인 2020.02.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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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숙 (수필가·어린이도서연구회회원)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冬至). 동지에는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예부터 일 년의 시작으로 간주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동지를 맞아 두 아이들과 함께 동지팥죽을 만들었다. 겨울다운 겨울로 접어드는 이맘때면 어김없이 치르는 우리가족만의 소박하지만 경건한 의식이라고나 할까.

동지팥죽은 크게 3단계에 걸쳐 완성된다. 팥이 잠길 정도의 물을 붓고 끓이다가 물이 끓으면 팥을 체에 받혀 찬물에 헹구는 과정을 세 번 반복한다. 팥 양의 2배 정도의 물을 붓고 다시금 끓인 후 불을 끄고 밤새 그대로 둔다. 탐스럽고 풍성하게 잘 삶아진 팥과 팥물을 함께 믹서기에 곱게 갈아 팥물을 준비한다. 찹쌀가루를 익반죽한 후 적당히 떼어 가래떡모양으로 늘인 후 일정한 크기로 나누어 새알심을 만든다. 팥물이 끓으면 미리 불려둔 쌀을 넣어 눌지 않게 저어준다. 쌀알이 적당히 퍼지면 끓는 물에 데쳐 찬물에 헹군 새알심을 넣고 골고루 한참을 저어준다. 팥죽이 걸쭉해지면 간을 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 가족 모두가 참여해야 하니 동지(冬至)는 가족 모두가 동지(同志)되는 날이다.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지만 재료준비부터 설거지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해 전수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은 차고 넘친다. 단순히 먹는다는 의미 외에도 음식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고 가족이 함께 배움과 성장의 시간을 공유하는 밀도 높은 시간인 것이다.

김영민 교수는 칼럼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 에서 “요리의 시작은 장보기이며 식사의 끝은 설거지다”라고 하면서 “문명생활의 대가는 엄청난 설거짓거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삶이 한순간의 이벤트가 아니니 어쩌면 인간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작고 세세한 것들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 것인지도 모른다. 장구한 세월을 달과 해로 나누어 달력을 만들고, 세시풍속이며 각종 기념일 등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내는 것처럼.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모 영화에서 나온 말처럼 ‘불편한 타인과의 동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의미이고 그 의미를 나누는 대상이 가족이기에 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때때로 끈끈한 동지애를 발휘하고 사랑하는 기술을 배워 지혜롭게 실천도 해야겠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어쩌면 일상에서 ’같이 먹고 함께 사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실천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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