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층과 층 사이
[경일춘추]층과 층 사이
  • 경남일보
  • 승인 2020.02.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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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란 (수필가)
손정란


며칠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괜히 마음이 들썽해 밤새도록 잠을 설쳤다. 몸이 서툴러 우우우 기지개를 켰다. 이냥저냥 시간만 보내선 안 되겠다 싶어 하루하루를 다잡았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새삼스레 올려다본 큰방 천장엔 물이 샌 만큼의 땜질하듯 서둘러 바른 종이 색깔이 다르다.


일고여덟 해 전 하룻날은, 아는 사람과 만남도 만들지 않았고 집안의 지저분하거나 어지러운 곳을 쓸고 닦아 말끔했다. 집은 날마다 쓸고 닦지 않으면 머리카락과 먼지가 뭉쳐 다니는 곳이다. 바깥에 나갔다 돌아와 문을 열면 오두막이라도 내 집이 으뜸이었다. 등을 대고 누울 방이 있고 컴퓨터가 있고 책시렁에는 책이 꽂혀 있다.

갖춤은 끝났다. 세탁기에 넣어 돌릴 빨랫감도 없고 냉장고에는 먹을거리로 채워놓았다. 그러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삼십 분쯤 지났을까.

어라, 웬 망치 소리와 드르륵거리는 기계 소리? 위층인지 아래층인지 아침나절부터 공사 중이었다. 우지직, 저것은 벽을 부수는 소리인가. 쾅 쾅, 요것은 기계 송곳이 뚫어 놓은 자리를 무너뜨리는 것이고. 우짜꼬, 나는 한겻도 컴퓨터에서 손을 뗄 수 없는데…. 잠깐 온갖 소리가 멈추었다.

이어지던 엄청난 소리가 갑자기 딱 그쳤을 때의 고요함, 이제 끝났을라나 했는데 다시 벽을 넘어뜨리고 산도 무너뜨릴 듯이 들들거린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아파트가 다 부서지는 것 같다. 참말로 싫다. 저 소리, 세상의 모든 벽을 모조리 없앨 참인가.

와르르 쿵, 보이지도 않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듯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내 몸이 깎이고 구멍이 나는 것처럼 진저리쳐진다. 옆집 문을 두드렸다. “우리 집 바로 아래라요.” 옆집 아주머니는 두 몫으로 답답한지 볼멘소리다.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갔더니 부엌 쪽 바닥과 화장실 바닥이 파헤쳐져 있었다. 주인은 간 데 없고 일꾼 셋이서 마음대로다. 위층에 사는 사람이라 말하고 공사가 언제 끝나느냐고 물었다. 벽돌 먼지를 뿌옇게 뒤집어쓴 일꾼 한 사람이 눈을 껌뻑거리며 “사나흘이나 걸릴 거요” 한다. 기맥혀. 하루도 아니고 사나흘이나?

그러구러 아흐레가 지났다. 모꼬지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큰방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옴마야, 까무러칠 뻔하였다. 천장에서 물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방바닥엔 물이 흥건했다. 관리실 사람을 부르고 위층 주인에게도 알리며 어이없어하다가 그 노랑북새에도 손전화로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이튿날부터 우리 집 위층에서 뜯어내고 부수고 하느라 일곱 날을 내 귀를 먹게 했다. 내가 몬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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