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개구리’ 처지에 처한 대한민국
‘삶은 개구리’ 처지에 처한 대한민국
  • 경남일보
  • 승인 2020.02.10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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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효 (논설위원)
‘삶은 개구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끓는 물에 집어넣은 개구리는 바로 뛰쳐나와 살지만, 서서히 데우는 찬물에 들어간 개구리는 조만간 직면할 위험을 인지하지 못해 결국 죽게 된다는 뜻이다. 아주 점진적으로 증폭되는 위험에 개구리는 반응하지 못해 서서히 죽어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딱 그 ‘개구리’다. 심화되는 국토불균형이 우리나라를 ‘삶은 개구리’ 처럼 멸망의 길로 가게 하고 있다. 서서히 진행됐던 국토불균형이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급격해지고 있다. 수도권(서울·인천·경기) 집중화 때문이다. 그 폐해가 우리나라를 ‘삶은 개구리’로 만들고 있건만 모두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점차적으로 진행될 때에는 그 폐해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급격하게 진행될 때에는 인지해야 하는데도 죽어가고 있는 개구리 마냥 아예 반응이 없다. 대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오히려 수도권 집중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 정치·경제·사회·문화계를 이끌고 있는 리더층이 하는 행태를 보면 그렇다. 후대의 삶은 물론 심지어 국가의 향후 존망에는 관심이 없다. 자기들만 잘 살고, 군림하고 있는 지금이 중요할 뿐이다. 이들도 수도권 집중의 위험성이 국가 마저도 멸망시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가 소멸되는 것 보다도, 후대들이 겪을 대재앙 보다도, 자신의 입신양명·출세가도가 우선이요, 당장 지금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더 우선이다.

수도권 면적은 국토의 11.8%이다. 여기에 100대 기업 본사의 95%, 전국 20대 대학의 80%, 의료기관 51%, 공공기관 80%, 정부투자기관 89%, 금융기관 70%가 몰려 있다. 국가 경제력의 2/3, 국세 수입의 3/4이 집중돼 있다. 수도권에 국가의 모든 재원이 몰려 있는 상태에서 이제 인구 마저도 절반을 넘어섰다. 정상적인 국가에서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집중도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식으로 편중되다가는 지방은 다 고사하겠다는 게 단순한 비명은 아닐 것”이라며 그 위험성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대책을 세우지도, 실행하지도 않는다. 수도권 집중 600년 역사에서 수도권 집중이 하락·둔화된 시점은 ‘균형발전·분권’ 기치를 들고 153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기 시작한 노무현 정부 때와 그 공공기관 입주가 본격화된 2011~2016년이었을 뿐이다. 그 위험성을 알고 실행한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유일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노무현 정부 못지않은 균형발전정책이 실행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용인 반도체 첨단산단 조성, 3기 수도권 신도시 발표에 이은 광역교통대책까지 수도권 발전 조치를 잇따라 내놓았다. 노골적으로 수도권으로 와서 살라고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같은 조치들이 젊은이들을 수도권으로 더 몰려들게 했다. 그 결과 수도권 인구는 지난해 12월 사상 처음으로 절반을 넘게 됐고, 이후 인구 쏠림은 갈수록 더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반면 지방에는 어음성 조치만 내놓고 있다. 차일피일 미루던 공공기관 2차 이전을 총선 후에 검토하겠다는 어음을 날렸다. 총선이 다가오자 다급하게 내놓은 게 ‘반드시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검토하겠다’는 불확실성이다. 총선 이후에는 부도가 날 수 있는 어음이다.

대한민국은 점차 물의 온도가 높아져 죽기 직전에 다달은 개구리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 수도권으로 돈, 일자리,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이어, 인구 마저도 쏠렸다. 국토불균형 상황이 더 이상 손쓸수 없을 정도로 막판까지 몰린 상태다. 지방은 사람이 거의 없는 유령도시화되고 있다. 지방은 소멸되고 있고, 이는 곧 국가 소멸로 이어진다. 지구촌에서 ‘국가 소멸 1호’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예언의 현실화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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