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부르는 희망 (2)거제 피플퍼스트 별동아리
함께 부르는 희망 (2)거제 피플퍼스트 별동아리
  • 백지영
  • 승인 2020.02.10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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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반짝반짝 빛날 거예요”

청년 발달장애인 ‘직장 생활 유지’ 목표
부모·관련단체 아닌 당사자가 모임 주도
스스로 문제해결·권리주장…자립 밑거름

“지난 화요일에 실업 급여를 신청했습니다”
“회사에서 불 안 나게 잘 감시하고 짐도 날랐어요”

“지난주 자조모임에 빠진 게 너무 아쉬웠어요”
“일주일간 별 탈 없이 일만 하면서 잘 지냈어요”




지난달 18일 오전 10시께, 거제시장애인복지관 3층 소강당에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들어섰다. 일주일만의 만남이 그리도 반가울까. 시끌벅적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서야 자리에 앉은 뒤 한 명씩 한 주간의 일상을 전하기 시작했다.

매주 토요일 진행되는 ‘별동아리’ 모임의 첫 순서다. 별동아리는 거제지역 청년 발달장애인 당사자 20여 명으로 구성된 자조모임이다. 일부 취업 준비생이나 실업 상태의 회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착실히 직장에 다니고 있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모임의 시작은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거제지회에 소속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모임을 꾸리면서부터였다.

자녀들의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아(현재는 폐지된 장애등급 기준 발달장애 3급) 장애연금·활동지원·복지혜택 등에서 배제됐다고 느꼈기에 부모들이라도 자녀교육에 힘을 합쳐 나서보자는 취지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성인이 된 당사자들이 직장을 구하자 모임의 방향은 자연스레 당사자들의 자신감 있는 직장 생활 유지로 바뀌었다.

별동아리가 주목 받는 것은 관련 단체 등이 아닌 당사자 스스로가 모임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당사자들은 부모가 아닌 자신들이 주축이 돼 모임 방식·내용 등을 결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장애 이전에 사람(people·피플)으로 먼저(first·퍼스트) 알려지기를 원하는 전국 발달장애인 당사자 자조모임들의 집합체 ‘한국피플퍼스트’ 거제 지부로 활동을 시작한 시점이다.

2년간 별동아리를 이끈 박정빈 초대회장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모임을 만들었다”며 “혼자서 계속 쭈그리고 있으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모임에서 서로 몰랐던 직장 생활 얘기를 하다 보면 자신감 있게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인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동호회 활동을 다니는데 발달 장애인은 그런 모임 자체가 드물다”며 “이렇게 모임을 통해 친목 활동을 하니 좋다. 이게 없었으면 친구들과 교류하는 방법을 몰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별동아리 당사자들이 투표 등을 통해 방송 댄스·배드민턴·볼링·요리 등 하고 싶은 활동을 뽑으면 부모 모임이 해당 강사를 섭외하거나 장소를 마련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기간·회차가 한정돼 있긴 했지만 거제시 희망복지재단이나 거제시장애인복지관 측이 일부 비용 지원, 장소 제공, 사회복지사 배치 등의 도움을 주기도 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이날 지켜본 당사자들의 주간 소감 발표는 각양각색었이다. 쑥스러운지 강단에 앉은 회원들 대신 사회자나 천장·바닥을 쳐다보며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긴장한 기색 전혀 없이 자신의 일상을 담담히 전달하는 이들도 많았다.

볼링을 쳤다는 소식에는 누구와 갔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친구·가족과 술을 마셨다거나 PC방에서 게임을 했다는 이야기에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사실 예전부터 발표 시간이 이렇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과거에는 자기 차례에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어색해하는 당사자가 대부분이었지만 모임 회차가 늘어가면서 자신의 주장과 의사 표현에 조금씩 늘었다.

별동아리의 결성·운영을 돕고 이들의 부모 모임을 이끌어온 박선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거제지회 부회장은 이러한 성장이 대견한 기색이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거제 지역사회에서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며 “형제자매에 부담 주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끔 모임에 관련 교육을 계속 녹여내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히 인상 깊게 남은 일로는 지난해 열린 한국피플퍼스트대회를 꼽았다.

“당시 숙소에 사람이 한꺼번에 많이 몰린 탓인지 씻기가 불편한 상황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직접 돈을 내고 지하 사우나에 가서 씻는 것을 택했어요. 본인이 돈을 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모습에 주최 측이 많이 놀랐대요”

박 부회장은 추후 결혼 등으로 당사자가 부모 등과 생활이 분리돼 홀로 서야 할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한 주 소감 발표가 끝나자 모임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회복지사가 앞으로 나섰다. 매주 당사자들로부터 취합하고 있는 활동 소감 방식 변경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휴대전화 앱(밴드)에 올리는 기존의 방식과 종이에 직접 써서 제출하는 신규 방식 중 어떤 게 좋은지 거수투표를 진행했다.

이상현 사회복지사는 “특정 방식으로 취합하자고 통보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들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원하는 방식을 직접 선택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혹 모임이 지향하는 방향을 넘어서 표류하려고 할 때만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할 뿐 그 외엔 묵묵히 모임을 지켜본다.

사회복지학에서 얘기하는 임파워먼트(자력화) 접근이다. 당사자가 지닌 잠재력을 힘을 믿고 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대인관계나 능력을 증가시키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소감 발표를 끝내자 소강당에는 이들과 오랫동안 율동을 맞춘 방송 댄스 강사가 들어섰다. 수업에서 배운 춤을 지역 행사에서 공연으로 선보인 적도 있는 만큼 상당수가 리듬에 맞춰 익숙하게 몸을 움직였다. 점프 순서에서 허벅지 높이만큼 크게 뛰어오르는 등 일부러 과한 몸짓을 하는 친구의 모습에 깔깔대면서 춤을 추는 모습이 유쾌해 보였다.

여러 곡에 몸을 맞추고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불현듯 이들의 의상이 눈에 들어왔다. 7명이 같은 검정 후드티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에 새겨진 ‘BE KIND TO UNKIND PEOPLE. THEY NEED IT THE MOST(불친절한 사람에게 친절하라. 그들이 가장 친절을 필요로 한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지난해 방송 댄스 공연에 나섰을 때 맞춰 입었던 옷이다.

별동아리 회원들은 장애인 관련 각종 행사에서 기념품으로 주는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옷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박 부회장은 “과거 휠체어 마라톤 대회에 참가자가 아닌 봉사자 자격으로 나섰을 때 ‘장애인’이 인쇄된 옷을 주길래 반발한 적이 있다”며 “별동아리 회원들은 장애인이라고 옷에 이름표처럼 새기고 다니기보다는 돈을 모아 직접 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단체복을 맞추는 걸 선호한다”고 말했다.

방송댄스를 마치고 오후는 온전히 회원들끼리 채워내는 시간이다. 점심을 먹은 별동아리 회원들은 곧 사등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먼저 몸을 풀기 위한 단체 달리기 순서, 아침 주간 소감 발표 때 “헬스장에서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해 근육통이 왔다”고 앓는 소리를 했던 효정 씨 등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이 시원하게 구령을 외치며 기운을 북돋웠다.

이어지는 줄넘기와 배드민턴도 회원들이 의논해 진행 방식을 정했다.

“줄넘기 15개씩, 2세트 할 거예요. 걸려도 괜찮으니 넘은 걸로 쳐요” 운동에 조금 더 능숙한 회원이 방향을 이끌며 아직 익숙하지 않는 회원들에게 요령 등을 알려준다.

별동아리는 얼마 전 차기 회장을 선출했다. 투표 결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김준혁 회장이 앞으로 별 동아리를 이끌게 됐다.

과거 자조모임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그의 부모는 김 회장이 별동아리에 잘 적응한 것은 물론 “모임을 잘 이끌어 보겠다”는 공약으로 회장까지 맡게 되자 대견스러워하는 눈치다.

별동아리가 생활의 활력소라고 꼽은 박민희(22·여)씨는 최근 합류한 신입 회원이다. 그는 “집에 혼자 있었으면 쓸쓸했을 텐데 자조모임에서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며 “선생님 없이 우리들끼리만 활동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4년 차 회원인 정호준(22)씨는 “이 모임에 나오면서 친구들과 이모들, 그리고 가족과 나 자신을 믿게 됐다”면서 “사람들은 ‘너는 장애인이니까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된다’고 생각한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불가능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별동아리는 최근 자체적으로 회원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초창기에는 부모들이 데려온 자녀들로 구성됐지만 이제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지인들을 데려오곤 한다.

2년 전 선배의 소개로 모임에 나오게 된 김동현(24)씨는 자조모임에서 미래를 위한 발걸음을 시작했다. 현재 재학 중인 한국복지사이버대학을 졸업해 자격증을 따고, 자조모임 동료들과 자립 훈련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김씨는 “빨래하는 방법이나 요리·청소 등을 구체적으로 배워서 나중에 장가갔을 때 유능한 가장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날 모임이 막바지에 이르자 박 초대회장은 자조모임 결성을 망설이는 발달장애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 번만이라도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와 행동에 나서보세요. 자조모임이 모든 힘든 부분을 극복하게 만드는 ‘만능’은 아니지만 계속 뒤로 물러난 채 똑같은 생활만 반복하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얻어 가는 게 있답니다”

백지영기자 bjy@gnnews.co.kr






 

별동아리 회원들이 지난달 17일 오후 거제시 사등실내체육관에서 배드민턴 시간에 앞서 단체 달리기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별동아리 회원들이 지난달 17일 오전 거제시장애인복지관에서 방송댄스 강사의 리드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별동아리 회원들이 지난달 17일 오전 거제시장애인복지관에서 방송댄스 강사의 리드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별동아리 회원들이 지난달 17일 오전 거제시장애인복지관에서 한 주간의 일상을 발표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진행되는 자조모임의 첫 번째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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