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키움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문화탐방[3]
꿈키움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문화탐방[3]
  • 강민중
  • 승인 2020.02.11 1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빈의 삶 몸소 실천한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
지난해 이맘때쯤 세계의 이목은 이곳에 집중됐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 장소였던 베트남 ‘하노이’.

베트남 전쟁을 치룬바 있는 미국 대통령과 현재 남북 분단을 겪고 있는 북한 정상과의 만남에 세계인은 흥분했다. 결과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없었지만 ‘하노이’는 세계인의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우리에게는 박항서 감독으로 더욱 친근해진 베트남의 수도다.

‘꿈키움 교실 활성화를 위한 사제동행 문화 탐방단’은 지난달 13일부터 17일까지 3박5일간 역사의 현장이자, 오토바이의 천국, 세계의 공장 등 새로운 수식어를 써 내려가고 있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찾았다.

 
 
◇세계의 시선 몰리는 하노이

황사로 시야가 흐리다. 오토바이 매연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하노이시는 앞서 다녀온 호치민시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날씨부터 서늘했다. 15~25도로 낮에도 긴 셔츠하나는 필요했다. 외모도 조금은 달랐다. 공식적인 인구는 800여만명이지만 출생신고를 안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다고 하니 900만~1000만명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가이드에게 호치민과 하노이의 차이를 묻자 베트남에서 “호치민시가 경제”라면 “하노이시는 정치”라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베트남 같은 곳이라고….”

탐방단의 첫 방문 방문장소는 지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차 하노이를 방문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이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호치민 주석의 묘소로 베트남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은 외교 관례에 따라 바딘광장에 있는 호치민 묘소에 헌화를 한다고 했다.

“여러분들이 대한민국 학생 대표의 자격으로 오신 것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학생들의 쑥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자세가 곧아진다.

버스에서 내리자 끝없이 넓은 광장이 펼쳐졌다. 시원한 공기와 넓게 펼쳐진 시야가 머리를 맑게 한다. 산책하기 가장 좋은 날씨다.

하지만 5~10월의 이곳은 그늘이 없어 둘러볼 엄두가 안날만큼 무덥다고 한다.

탐방단 일행은 광장을 산책하듯 걷다가 묘소 건물이 눈에 들어오자 호치민을 만나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장소가 지닌 무게 만큼 공안들이 근엄한 얼굴로 호치민의 묘소를 지킨다. 기념사진을 남기는 것도 눈치가 보일 정도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영묘는 1969년 호치민 주석 사망 후 1975년 완공됐다. 호치민 주석 시신은 유리관에 안치돼 베트남 국민들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바딘광장은 호치민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곳이기도 하다. 기념촬영을 위해 현수막을 펼치는 것도 허용이 안됐다. 가이드의 충분한 설명에도 공안들은 단호했다. 어느정도 경제적 개방이 이뤄지긴 했지만 사회주의 국가다 보니 표현의 자유는 제약이 많은 듯 했다. 광장 건너편으로 국회의사당이 자리한다. 학생들은 커다란 베트남 국기봉과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긴다.

호치민 묘를 중심으로 바딘광장 뒤쪽에 베트남 국보 1호인 한기둥 사원이 있다. 한기둥 사원은 하노이 천년고찰로 작은 호수 중앙에 한기둥 위에 세워진 불당으로 일주사라 이름을 붙이고 흔히 한기둥 사원이라고 부른다. 베트남 왕조가 꿈속에서 아이를 안은 관음보살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얻었다고 한다. 이에 감사의 뜻으로 연꽃 모양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사원 뒷편에는 소원이 이뤄진다는 고목이 서있다.

“나무를 세번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학생들은 합장을 하고 나무를 돌며 각자의 소원을 빌어본다.

 
 
◇호치민의 청렴을 배웠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정말 가는 곳 마다 호치민과 함께 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어디든 호치민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호치민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호치민은 1890년 베트남 중부지방 작은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호치민은 1911년 신학문 공부를 위해 증기선의 견습 요리사 자격으로 프랑스로 떠난 뒤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을 거쳐 다녔다.

해외 생활을 하는 동안 시야를 넓혀가며 사회주의 혁명가로서의 가치관을 성장시킨 그는 세계 1차 대전의 종료 이후 파리에 정착해 식민지 해방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프랑스로부터의 베트남 독립운동 전개에 크게 노력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베트남은 일본 제국 정부가 포츠담 선언을 통해 항복 문서에 조인한 1945년 9월 2일 공식적으로 베트남공화국으로 독립 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베트남은 1954년 제네바협정에 따라 남북으로 갈라지게 됐다. 호치민은 북베트남의 최고 지휘관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호치민은 1969년 9월 2일, 베트남의 독립 24돌을 기념하는 그 날 오전 9시 45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평생을 조국을 위해 살아온 그의 헌신, 특히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온 그의 자세는 더욱 더 존경하게 만든다. 그가 남긴 유품은 지팡이 하나와 옷 두벌,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평생 결혼을 안했으니 유족도 없었다. 거처는 조그만 오두막이었으며 작은 서재에 몇 가지 생활 도구만이 있었을 뿐이다. 항상 허름한 농민복을 입고 다녔으며, 고무 타이어를 잘라 만든 샌들을 끌고 다닐 만큼 검소했다고 한다.

호치민은 높은 위치에 올라서고부터는 친척들을 비롯한 고향사람들과의 만남도 피했다고 한다. 혈연과 연고라는 이유로 청탁이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또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베트남 국민들에게 청렴의 모범을 보였다.

그의 청렴한 삶은 1960년대 말 작성한 유언장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가 죽은 후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서 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도자기 상자에 담아 하나는 북부에, 하나는 중부에, 하나는 남부 베트남에 뿌려다오.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다만 단순하고 넓으며 튼튼하고 통풍이 잘 되는 집을 세워 방문객들이 쉬어갔으면 좋겠다. 방문객마다 추모의 뜻으로 한두 그루씩 나무를 심게 하라. 세월이 지나면 나무들은 숲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유언은 단 하나도 지켜지지 못한듯 보였다. 호치민의 시신은 대리석 영묘에 방부처리된 채 안치돼 있다. 곳곳에 그의 초상화와 동상들이 자리한다. 이는 국부 호치민이 베트남 민족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상징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인 듯 하다. 죽어서도 쉬지않고 베트남인들과 함께 하며 베트남 국민의 정신을 지탱하고 있는 듯 하다.

탐방단은 호치민을 기리고 있는 호치민박물관과 베트남 독립투쟁 역사를 알 수 있는 국립역사박물관을 차례로 방문하며 그의 발자취를 밟아갔다.

강호상 단장은 “호치민의 청렴했던 삶은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배울점이 많았다”면서 “교사와 학생들이 호치민이 생전에 입었던 옷 등 유품과 생활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는 듯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와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금까지도 느껴져 더욱 감동적인 시간었다”고 덧붙였다.

강민중기자 jung@gnnews.co.kr



 
강호상 단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