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키움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문화탐방[4]
꿈키움교실 활성화 사제동행 문화탐방[4]
  • 강민중
  • 승인 2020.02.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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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세계, 다양한 문화 '꿈키움 교실'
 
원유 매장량이 중동의 60%, 커피수출 세계 1위, 새우수출 세계 1위, 라텍스 수출 2위, 쌀수출 2위 등 자원대국, 거기에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젊은 인적자원까지 “성장이 눈으로 보인다”는 말이 실감될 정도로 역동적이었다. 인적·물적 자원이 넘치는 나라다.

베트남 경제는 최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10~15년 내로 한국을 따라잡을 수도 있다는 게 베트남 교민들의 중론이다. 특히 천혜자연은 외화를 끌어모으고 있는 최고의 관광자원이다.

 
 
◇섬들이 주는 치유의 선물

하노이에서 지루한 길을 타고 5시간. 탐방단의 목적지는 세계 5대 경관을 자랑하는 하롱베이다. 3000여개의 섬들로 이뤄져 장관을 이룬다는 지역으로 모 항공사 메인광고로 더 유명해졌다.

배에 오르기 전까지 학생들의 얼굴에서 큰 기대감은 없어 보였다. ‘섬’하면 경남에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있다고 부심도 부려본다.

우리가 타는 배는 일반 목선보다 좋은 크루즈선이었다.

“배만 7시간 탑니다. 점심도 배에서 먹습니다.”가이드의 설명에 “배만 어떻게 7시간을 타요. 멀미도 한단 말이예요.” 일부 학생들사이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7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을 것이다.

파도가 전혀 없었던 평화로운 바다에 3000개 섬들이 빚어낸 비경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영화 ‘인도차이나’와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에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는 않은 곳이다.

하롱베이, 하늘에서 용이 내려온 만이라는 뜻이다. ‘하롱’ 이라는 지명은,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를 막기 위해 하늘에서 용이 이곳으로 내려와 입에서 보석과 구슬을 내뿜자, 그 보석과 구슬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되어 침략자를 물리쳤다고 하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하롱베이의 매력은 점점이 떠있는 섬들 사이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배가 스칠때 마다 바다를 뚫고 솟은 섬들이 손을 흔든다.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들은 보트를 타고 섬과 섬들 사이를 지나치며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보트 위에서 간단히 식사도 하며, 잠시 섬으로 다가가 동굴 깊숙한 곳으로 탐험도 나선다. 겉으로는 알 수 없으나 동굴 탐험을 통해 하롱베이 섬 중 많은 섬들이 동굴을 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웅장하다는 동굴에 도착했다. 해발 50미터의 동굴로 커다란 종유석을 자랑한다. 석회암 구릉 대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닷물과 비바람에 침식되어 기암을 이뤘다. 동굴은 지금도 진행 중인 상태라고 한다. 그 자태 또한 에메랄드 빛의 바다와 잘 어우러져 있다. 숨겨진 비밀을 간직한 채 절벽을 이루고 있는 섬들, 환상적인 동굴, 태양 빛의 변화에 따라 모습과 빛깔을 미묘하게 바꾸며 비경을 뽐내고 있다.

오전 이른 시간에 출발해, 오후 한나절을 바다 위에서 섬들을 ‘경이’와 ‘신비’로 마주한다.

세계적 경치로 인정받은 하롱베이는 현재 지구촌 관광도시로의 면모를 확신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규모 호텔과 테마파크가 들어섰고, 지금도 호텔공사가 한창이다. 또 수백곳의 상가들이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하롱베이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따뜻한 휴식이다. 하롱베이를 찾는 관광객들은 놀거리 즐길거리가 아닌 자연이 선사하는 휴식과 안식을 찾아 오는 것이다.

이날 마주한 3000여개 섬들도 마치 학생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선물과도 같았다.

 
 
◇역사의 아픔과 마주하다

높은 주상복합 건물 아래 자리한 감옥, 베트남의 서대문 형무소라고 불리는 호아로 수용소는 노란색의 벽면에 입구에서 봤을 때는 도무지 형무소였다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수용소 외부를 가로막는 벽면의 정상에 죄수의 탈출을 어렵게 하기 위해 촘촘히 박아둔 깨진 유리병 정도가 ‘아 여기 감옥이었지’를 깨닫게 해줄 정도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아로 수용소. 베트남의 프랑스 식민 지배자들이 건설한 호아로 감옥은 대부분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데에 사용됐다. 북 베트남이 독립한 후, 이 감옥은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군 전쟁 포로들을 수용하는 데에 사용됐다.

감옥은 두터운 노란색 돌로 지은 건물들 안에 있었다. 입구임을 알리는 위압적인 검은 문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괴물의 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감옥의 벽 뒤에서는 처음에는 프랑스인들의 손으로, 그 뒤에는 베트남인들의 손으로 죄수들에 대한 고문과 학대가 자행됐다. 1913년에는 615명의 죄수들이 있었으나, 1953년이 되자 죄수들의 수는 2000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들 대부분은 프랑스 지배 아래에서 베트남의 독립 투쟁을 이끈 조직의 일원들이었으며, 뜰에 설치된 단두대가 정기적으로 목을 잘랐다.

공산당의 전 서기장 도 무오이 역시 예전에 수감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는 1945년 100명의 다른 재소자들과 더불어 하수도를 통해 탈옥했다. 미군 전쟁 포로들은 1964년부터 수감되기 시작했고, 감옥은 1973년까지 쓰였으며 ‘하노이 힐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3년 싱가포르 사업가들이 하노이 타워를 짓기 위해 감옥 대부분을 헐어 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프랑스 지배 하에서 베트남인들이 고통 받았던 상황에 대부분 초점을 맞춘 박물관이 됐다. 수용소 내부에는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은 모형과 사진이 전시돼 마음이 불편해진다. 목에 칼을 채우고 한쪽 발도 묶어 놓은 당시의 사진들. 죄수들이 편히 있지 못하기 하기 위한 기울어진 독방, 수용소 내부공간을 보고 나오면 빛이 잘드는 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 전쟁 이후 평화를 향한 활동들에 관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월남전 당시 한국과 베트남 사이 벌어진 비극적인 일들을 치유하려는 일련의 노력들도 한쪽에 전시돼 있었다. 호치민과 북한의 김일성이 함께 악수하고 웃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어 탐방단 일행은 20여분 떨어진 공자문묘를 찾았다. 공자문묘는 1070년 리왕조때 공자를 모시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공자문묘는 중국, 한국, 베트남 세나라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공자문묘에서 베트남식 과거시험을 치렀고 조선시대 성균관처럼 유생들이 공부한 곳이라는데 그 규모 또한 컸다.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이라 보면 되겠다.

탐방단일행은 마지막 일정으로 하노이시민들의 삶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구시가지를 전기차로 나눠 타고 달렸다. 이곳에서 사제간에 선물도 사고 사진도 찍는 등 추억을 남겼다.

닿을듯 넘어질 듯 빽빽히 모여 물결처럼 흘러가는 오토바이 행렬 뒤를 쫓아가며 그들의 삶을 엿본다. 매퀘한 매연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탐방단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탐방단은 하롱베이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호아로 수용소에서 인권의 소중함을, 베트남 영웅 호치민에게서 청렴을, 베트남 전쟁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오토바이 행렬에서 배려와 그들의 삶, 에너지를 느꼈다.

 
 
◇사제간의 동행…사랑이 가득

인솔교사 1명에 학생 4명이 한조를 이뤄 3박4일간 생활하는 ‘사제동행’ 여행. 베트남에서의 3박5일 일정 동안 옆에서 지켜본 사제간은 수십년 전 기억 속 선생님의 절대적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탐방기간 동안 선생님은 학생들의 인솔자이자, 부모님 때론 친구였다. 같은 눈높이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배우고, 즐기면서 추억은 쌓여갔다.

제자들의 귀여운 모습을 놓칠세라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더운 날씨에 손부채를 부쳐주던 선생님, 여행지에 두고온 선생님의 물건을 챙겨주며 시어머니 역할을 자처하던 학생들, 전통모자로 아이들에게 장난을 걸며 그들의 문화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 박물관에서 베트남어와 영어로만 적힌 설명서를 머리를 맞대고 해석하던 모습, 뒤쳐진 학생 손을 잡고 끌어주는 선생님과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선생님을 뒤에서 밀어주는 아이들….

편의점에서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하고, 낯선 언어에 편의점에서 계산을 머뭇거리는 선생님을 위해 대신 용기내는 학생, 밤에 번개(?)만남으로 한방에 모여 벌였던 컵라면 파티 등 낯설었던 광경 등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질 법한 선생님과 다른학교 친구들과의 여행은 시간이 지나며 따뜻함으로 채워진 듯 했다.

강호상 단장은 “학생들은 베트남에서 수백년을 거슬러 그들의 역사를 접했고 또 일상 속에 들어가 다양한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기도 했을 것”이라며 “특히 사제간에 벽이 없이 소통하고, 이해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기회가 됐다. 이러한 경험이 꿈을 키우는 교실을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강민중기자 jung@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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