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대부분 문제는 듣기만 잘 해도 해결된다
[경일칼럼]대부분 문제는 듣기만 잘 해도 해결된다
  • 경남일보
  • 승인 2020.02.1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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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홍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필자가 국어 선생이기에 늘 국어나 국어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마도 직업 정신 때문이 아닌가 한다. 요즘 공익광고에서 참으로 좋은 광고 하나를 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잘못을 지적하면서 대부분의 문제는 듣기를 잘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광고이다. 듣기 교육을 방송에서 하고 있다. 국어를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광복이후 우리 국어 교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이 바뀌고 이에 따라 교과서도 바뀌었다. 그러나 일곱 번 이상 교육과정이 바뀌어 와도 줄곧 말하기와 듣기, 읽기, 쓰기 그리고 언어, 문학의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표현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더구나 교육과정에는 듣기, 말하기의 중요성은 줄곧 강조해 놓고 있다.

그런데 실제 우리 국어교육에서 과연 듣기, 말하기(이전에는 말하기, 듣기 순서로 되어 있었다)교육이 올바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쓰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 동안 수많은 국어교육 전문가들이 우리 국어교육이 교사 중심의 읽기 중심,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바꾼 것처럼 보이나 지금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는 온통 수능 문제 풀이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초·중고등학교를 나오면서 그 많은 국어 시간에 발표를 몇 번 했으며 진지한 토론과 토의 교육을 몇 번이나 받았던가. 듣기 교육을 체계적으로 한번이라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필자가 대학에 들어 온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기간 내내 발표를 한 번이라도 한 학생이 있는지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학생이 수업시간에 발표 한 번 하지 않고 국어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따라서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듣기, 말하기 교육이 전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의 학창시절도 그렇게 보냈고, 필자가 한때 고교 교사로 있을 때도 그랬다. 할 말이 없다.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따라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은 학생을 속이는 일이고 기만하는 행위라면 지나친 말일지 모르겠다. 그것이 교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가 교육과정은 그럴 듯하게 포장해 놓고도 실제는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만든 우리 교육정책과 입시정책에 있다는 것도 두루 아는 바다. 교육 책임자들은 해결할 의지도 없고 관심도, 정책도 없는 듯하다. 교육과정과, 교과서, 교육현장과 평가가 하나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모두 따로 놀고 있으니 교육이 올바로 될 리가 없다. 만약 어떤 학생이 “선생님, 교육과정에 듣기와 말하기를 가르치라고 돼 있는데 저희들에게 왜 가르치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오늘날 이른바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말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도 구별하지 못하는가 하면 말할 대상과 자리에 맞지 않는 말을 마구 함부로 한다. 토론을 할 때면 으레 싸우기 일쑤다. 이것 모두 우리가 국어교육에서 듣기, 말하기 교육이 올바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올바로 말하고 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면 역사적으로 모든 종교나 성인들의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있겠는가. 이천 오백년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공익광고에서까지 듣기 가르침을 광고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 국어교육에서는 언제쯤 말하기와 듣기가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사람됨과 능력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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