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9)경남 최초 ‘잠자는 사자’ 자누 도전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9)경남 최초 ‘잠자는 사자’ 자누 도전
  • 경남일보
  • 승인 2020.02.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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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산악연맹 울산산악회 박성만, 해외 첫 등반
정상 150m 앞두고 등정 시간 늦어 ‘통한의 후퇴’
자누 북봉 위용


“오늘은 시간이 늦었다. 정상은 불가능하다.”-김기혁 대장.

“안됩니다. 대장님. 거의 다 왔습니다.”-박성만 대원.
“이건 명령이다. 철수해!”-김기혁 대장

1980년대를 맞아 한국 산악계는 해외 원정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등반 지역도 일본 북알프스, 대만 옥산, 네팔, 유럽 알프스, 미국 요세미티, 남미 최고봉 아콩가구아(6960m) 등 다양했다. 1980년 한국 산악인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나슬루(8163m)를 동국대 산악회가 한국 초등하면서 히말라야 진출의 물꼬를 텄다. 경남에서도 1984년 자누(7710m) 겨울철 동계 세계 초등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면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뒀다. 경남은 자누 등반을 계기로 히말라야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표 참조)

경남 최초 히말라야 등반…박성만

1980년대 히말라야 원정 시대를 주도한 선봉장은 경남연맹 울산지부였다. 1984년 닐기리 중앙봉(6940m)을 등정(1982년)한 김기혁 대장을 중심으로 최성수·김동재·신교봉·박정식·송정두·서성수·박성만·안신현 등 전국에서 9명을 선발해 원정대를 구성했다. 경남산악연맹 울산산악회 소속 박성만 대원(당시 25세)이 참여했다. 박성만은 경남울산에서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자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1980년 울산산악회 입회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산에 입문했다. 1981년 한국등산학교 동계반을 수료한 후 신불산 금강폭포, 1983년 마산 무학산~경기 용문산 하계 단독 종주 등반, 1984년 가지산 쌀바위 대오버행 개척 등반했다. 1984년 대한산악연맹 우수 산악인을 수상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84년 1월 자누 등반 계획을 수립하고 전국 각지에서 대원들을 선발했다. 박성만은 그동안 등반 성과를 기반으로 당당하게 뽑혔다.

선발대가 출발에 앞서 네팔 티베트 게스트하우스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왼쪽부터 서성수 박성만 송정두 대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등반’

“1986년 K2, 1988년 에베레스트 훈련 대원으로 선발됐다. 1984년 1월 설악산에서 2차 훈련에서 자누 원정을 계획했다. 다들 못 간다고 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였다. 그래도 히말라야 등반에 대한 열정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대원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했다. 자누 정상에 꼭 태극기를 꽂겠다는 열정이 대단했다. 그렇게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누원정대는 원정에 필요한 경비 마련을 위해 1인당 200만원을 갹출했다. 또 비용 절감을 위해 셰르파 1명과 고소포터 1명 등 단 2명만을 고용키로 했다. 모든 대원들이 짐을 옮기고 루트를 만들어 정상에 가는 전략을 수립했다. 원정대는 100일이 넘는 합숙 훈련을 준비하는 등 만발의 준비를 했다.

15일간의 카라반…멀고도 먼 BC

10월 5일 원정대는 장도에 올랐다. 이날 오전 11시 53분 이륙한 비행기는 네팔로 향했다. 다음날 카트만두에서 도착, 행정 절차를 시작했다. 카트만두에서 식량과 개인 장비를 구입하고 관광성을 방문, 행정업무를 마무리했다. 10월 20일 박성만·송정두·서성수 대원이 선발대로 출발했다. 그들은 15일을 걸어 베이스캠프(4350m)에 닿았다. 멀고도 긴 카라반으로 대원들은 지쳐고 말았다. 11월 5일 고소 적응을 위해 야마타리 빙하를 종주하고 정찰에 나섰다. 대원들은 괴물 같은 자누를 바라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등반을 시작한 지 7일째 1캠프(4800m)에 군용 텐트를 설치했다. 원정대는 식량 부족과 높은 고도에서 등반으로 인해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김기혁 대장과 대원들은 11월을 식량과 장비를 수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첫 원정인 만큼 무리하지 않고 캠프를 낮게 낮게 설치했다. 대원들은 고도를 500m 정도 올리면서 2캠프(5300m), 3캠프(5800m), 4캠프(6400m), 5캠프(7100m)를 건설했다. 2~5캠프 구간은 대부분 경사 90도에 가까운 빙벽이 많아 로프를 깔고 전진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원들은 오버행 구간이 많아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경사가 워낙 심해 설벽을 깎아 텐트를 설치하는 것은 고통에 가까웠다. 단단한 얼음덩어리를 피켈 한 자루로 깎아 내기란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정상 공격조 ‘박성만·송정두·신교봉!’

12월 6일 공격 19일째. 대원들은 긴장했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등반보다 더 어려운 공격조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3명을 등정조로 선발할 계획이었다. 오후 4시 5캠프에 모인 5명의 대원들 시선은 무전기에 고정됐다. 모두 가슴을 졸이며 귀를 기울였다. 목이 탔다. 박성만은 회상했다. “부대장이 1차 공격 대원 명단을 발표하기 전에 이름이 빠지더라도 낙심하지 말라고 했다.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은 자신의 이름이 포함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 사실이다. 목이 타고 가슴이 조여 왔다.”

베이스캠프에서 무전이 날아왔다.
“박성만·송정두·신교봉!”
기쁨이 교차했다.

박성만은 덧붙였다. “사실 나는 후배에게 양보할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내 이름이 들어 있었다. 등정조에서 빠진 대원들은 진심으로 우리 손을 잡고 성공하라고 했다.”

정상 150m 앞두고 통한의 후퇴

12월 7일 공격조는 어렵게 침낭에서 빠져나왔다. 직선거리로 정상까지는 610m였다. 단숨에 갈 거리였지만 7000m가 넘는 이곳에서는 실현 불가능했다. 산소를 사용하지 않아 속도가 나지 않았다. 거친 숨을 내쉬며 2시간 정도 오르자 정상 아래 암벽에 도착했다. 그들은 강한 바람에 두 번이나 날려 갈뻔했다. 운 좋게 그들은 7550m를 넘어섰다. 이제 정상까지는 불과 150m를 남겨두고 있었다.

 
3_4캠프 구간을 등반하고 있는 박성만 대원
자누 정상. 김기혁 대원이 셰르파들을 촬영했다.

 

갑자기 무전이 날아들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다. 정상은 불가능하다. 철수하라.”
박성만은 애원했다. “안됩니다. 대장님. 거의 다 왔습니다.”
베이스캠프에서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명령이다. 철수해.”

그들은 정상에 오를 힘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늦어 정상에 오른다 해도 안전한 하산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대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다.
“겨울 세계 초등 기여 자부심 높다.”
12월 9일 김기혁 대장이 셰르파 2명과 함께 정상 공격에 나섰다. 2차 공격조는 오후 2시 20분 정상에 섰다. 자누원정대는 사전 답사 없이 곧바로 등반에 나서 동계 세계 초등을 이뤄냈다.

박성만씨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1차 정상 공격하는 날 텐트에서 물을 끓이다 코펠이 두 번이나 넘어졌다. 세 번째 물을 끓여 겨우 음식을 먹고 5캠프를 나설 때는 오전 9시가 넘었다. 말 그대로 해가 중천에 떴다. 새벽 4~5시쯤 출발했으면 충분히 정상을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동계 초등은 내가 아닌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 자누 동계 세계 초등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은 36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박성만 대원은 경남울산에서 처음으로 히말라야 진출자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1985·86 동계 에베레스트 등반, 1994년 디란피크 부대장, 98년 로체남벽 정찰·임자체 원정대장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사진제공=박성만

박성만씨
자누 개요
자누(Jannu)는 네팔 시킴히말라야 동부지역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현지에서는 ‘쿰바카르나(Kumbhakarna 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로 불리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리오넬 테레이가 이끄는 원정대가 1962년 초등했다. 자누는 카라반이 15일 정도 걸릴 정도로 길고 등반 난이도가 매우 높아 찾는 원정대가 거의 없었다. 특히 겨울철 동계 등반은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 외형적인 모습도 이집트 스핑크스나 잠자는 사자 형태로 위압적이다.

 
자누를 뒤로하고 하산하는 대원들.
멀고도 험난한 캠프 공략하는 대원들이 2_3캠프 구간을 등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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