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야구의 꽃
[경일춘추]야구의 꽃
  • 경남일보
  • 승인 2020.03.0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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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란 (수필가)
손정란

 

야구공도 둥글고 야구방망이도 둥글다. 야구 겨룸에서 만루 홈런을 친 선수들은 공이 수박 만하게 보였다든가 벼르고 있었다고 말하더란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 타자 앞까지 날아가는데 0.4초. 그 찰나에 어떻게 방망이를 휘둘러 공을 맞추는지 참말로 놀랍다. 그런데 잘 던지다 한 방 맞은 투수는 마운드를 내려와야 하나? 야구는 축구처럼 힘 있게 움직이거나 농구와 같이 빨리 몰아치지도 않는다. 투수는 슬쩍 모자 고쳐 쓰고 송진주머니 한 번 들었다 놓고, 포수와 한참 눈 맞추고 나서 공 하나를 던진다.

어쩌다 야구 겨룸을 보면 감칠맛 나게 만든다.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는 겨룸에서 선수들이 냅뜰힘으로 뛰는 시간은 얼마가 되는지 아시는가. 오십 분이 채 안 되더라고 한다. 그런데도 야구장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싱거워 보이는 야구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기고 짐이 뒤집어지는 까닭이다. 가슴을 서늘하게 하거나 더할 수 없이 마음을 졸이게 하는 느낌은 야구가 으뜸이다. 다 이긴 것 같았는데 어이없게 지기도 하고, 지고 있다가 마지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뒤집는 기쁨을 맛보는 선수들의 꽃모습이 미쁘다.

딱, 윙…. 하얀 잠자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금 막 태어난 잠자리의 날갯짓은 떠들썩하다. 어디에 내려앉을까. 많은 잠자리채와 뜰채가 나풀거리는 담장과 울타리 틈새. 잠자리는 날갯짓을 멈추고 사뿐히.

아마도 야구에서 끝내기 홈런만큼 달달한 게 없을 걸. 작은 공이 투수 손아귀를 떠나는 순간, 타자가 서두르지 않고 다이아몬드를 폼 나게 밟고 돌아오게 만드니까. 야구장의 일루 이루 삼루를 이은 안쪽과 뒤쪽의 선을 둘러싼 울타리를 넘어가는 아름다운 포물선과 함께.

겨룸에 나가지 않은 선수들이 두 팔을 번쩍 쳐들며 뛰어나와 손뼉을 치고 서로 얼싸안는다. 모두 환하게 웃는다. 그래서 주자가 꽉 찼을 때 터지는 만루 홈런이 야구의 꽃이라 부르는 기라.

초시계는 없어도 야구는 달력을 알뜰하게 채운다. 새로운 꿈에 부푼 가슴은 두 근반 세 근반. 새싹이 간지럼을 타고 먼 산의 연둣빛이 순한 초봄에 시작해서 뜨거운 여름에 꽃을 활짝 피운다. 입김이 호호 어리는 하늘연달 말 저녁에 사람 마음을 온통 설레게 해놓고 성큼성큼 떠나간다. 밍근한 하루가 저문다. 거기, 포물선의 한 점을 자국걸음으로 지나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사부랑한 삶의 끈 야물딱지게 조이면서. 날아라, 야구공. 어서 입 가리개를 벗고 야구장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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