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니스(slowness)
슬로니스(slowness)
  • 경남일보
  • 승인 2020.03.0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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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놀루와(협)대표)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수천 마리의 개미가 줄을 서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내 걸음으로도 수십 보가 넘었으니 그들의 걸음으로 환산하면 천 리 길 정도의 출애굽 길과 같았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여 바닥에 앉아 지켜보았다. 결국은 작은 터널로 들어가더니 다시 줄지어 나와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이 모습을 보고 시 한 수를 지었던 적이 있다.

-후회하지 않기- 개미가 줄지어 가네/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네/꽁무니에 달고 가네/기차처럼 칙칙폭폭 가네/어디 가는지 물어보지 않고 가네 /앞 개미만 보고 가네 /줄지어 되돌아오네 /가는 줄 오는 줄 두 줄이 되었네 /중간에 돌아오지 않네 /뒤돌아보지 않네 /끝까지 갔다 오네.

나는 2012년 1년 동안 섬진강 전 구간 212㎞를 토요일 마다 도보 답사를 했다. 이 때 발견한 철학이 하나 있다. ‘작고, 낮고, 느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크고, 높고, 빠른 것’에 치중해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균형이 깨지고 생태와의 불화가 생겨났다. 인간은 생태계에서 단 한 발도 앞서 갈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인류의 욕심이 빚어낸 재앙이다. 얼마나 많이 먹고, 얼마나 잘 입고, 얼마나 많이 다니고, 얼마나 즐기고, 얼마나 일 많이 하고, 얼마나 원대한 계획 세우고, 얼마나 좋은 집에 사는가. 여기에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다. 우주의 시스템이 알람을 울려주는 것이다. 이 알람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앞으로의 일을 좌우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떨까? 슬로니스, 느림. 이것은 단지 느리게 ‘사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인간성 회복 운동이요 창조적 원리로 다가가자는 생태 운동이요, 함께 살자는 공동체 운동이요, 철학이요 생활이다. 오늘날 생겨나는 문제 대부분은 이것과 반대되는 일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번의 경고성 알람이 우리에게 제시한 길은 그렇게 많지 않다. 두 가지다. 가던 길을 그대로 가든가, 다시 돌아와 느림의 길로 가든가. 이것을 실천하고자 1999년 결성한 것이 슬로시티다. 한국에서는 2008년에 본격 출범했고 하동군은 2009년에 이 운동에 동참했다.

우리는 개미 이상의 존재다. 끝에까지 가서 확인해 봐야 알 수 있는, 그래서 수천 마리의 개미들이 모두 끝까지 가서 확인하고야 돌아오는 그런 정도의 미물이 아니다. 알람만 듣고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감할 수 있다. 이즈음에서 ‘슬로니스’로 돌아감이 어떨까?

조문환/하동주민공정여행놀루와(협)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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