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01)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01)
  • 경남일보
  • 승인 2020.03.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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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창선도 출신 김봉군과 양왕용 교수의 문단 이력 읽기(10)
양왕용 교수는 그가 진학한 대학에 김춘수(1922-2004) 시인이 교수로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입학했다. 졸업후 취업이 보장된다는 측면에서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로 진학을 한 것이다. 그 당시로는 김춘수는 시창작과 이론을 겸비한 실력 있는 시인으로 평가되기는 했으나 오늘날처럼 ‘꽃’의 시인으로 시사에 남을 위대한 시인으로 소문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1961년 경북대학교 국문과에 부임한 후 전임교인 마산 경남대의 강의도 계속하며 마산과 대구를 오르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범대 국어과와 문리대 국문과를 통틀어 현대문학 교수가 김춘수 교수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양 교수는 1주일에 한 번씩 발간되는 경북대학보에 시를 투고하여 두 번 발표하고 경북대 유일한 문학 동아리 현대문학연구회에 가입하였다. 김 교수는 간혹 학보에 실린 작품을 신문지상에서 강평을 해주었는데 1학년 때에는 양 교수의 작품에는 언급이 없어 실망하기도 했다.

2학년이 되자 김 교수는 1학기와 2학기에 현대문학사와 현대시론을 직접 강의 했다. 그리고 작품을 가져 오라고 해서 첨삭지도를 받은 후에 학보에 발표되기도 했다. 4월 초에는 진해 군항제 구경을 학과 친구들과 같이 가서 우연히 백일장에 참가하여 차상으로 입상되었으나 소식은 한참 있다가 듣고 ‘신의 전설’이라는 그 작품을 학보에 발표하고 교내 예술제에 예비 시인으로 시낭송을 하기도 했다. 작품만 완성되면 김춘수 선생에게 보여드렸으나 별말이 없으시고 고쳐야 할 곳을 지적해 주는 것이었다.

2학년 겨울방학 때에 양 교수는 고향에서 유례없는 시창작의 열병에 휩싸였다. 10편에 가까운 작품을 완성하여 3월 개학과 더불어 김춘수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며칠 있다가 작품을 돌려 주었는데 전보다 진일보 했다면서 별다른 코멘트는 받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날은 다른 일로 김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했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뒤에서 ‘양군!’하고 김교수가 부르는 것이었다. ‘예’ 하고 돌아섰다. 김춘수 선생은 좀 떨리는 음성으로 “자네 요즘 시 쓴 것 없는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네도 이제 시단에 나가야겠는데 마침 서울의 ‘시문학’지에 내가 추천위원으로 이름이 올라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부탁하기는 그렇고 우선 거기로 작품을 보내보세”하는 것이었다.

양 교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선배들도 제법 있는데 대학 3학년 1학기에 추천이 시작되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 교수께서 나를 그동안 지켜 보시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때에 완성한 신작이 마침 3편이 있었다.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하고는 뒷날 당장 가져다 드렸다. 그 가운데 양 교수의 데뷔작이고 그해의 시단 연말 평에도 언급된 ‘갈라지는 바다’가 1965년 7월호 ‘시문학’에 1호 추천작으로 발표되었다. 김춘수 교수는 “내면을 분석한 작품으로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는 요지의 추천사를 썼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1966년 1월호에 ‘아침에’가, 그리고 1966년 7월호에 ‘3월의 바람’이 각기 추천되었다. 그러나 학부 졸업과 동시 대학원 국문학과에 입학하기 위하여 진학 공부에 매달리게 되었으며 6명이나 지원한 국문과에 국어학 전공인 대학 동기와 둘이서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1967년 김춘수 선생의 추천으로 대구의 명문사학 대륜고등학교 시간 강사를 하면서 시창작과 학문 그것도 그 당시로는 가장 미개척분야였던 현대문학 전공의 길을 나서게 되었다. 물론 지도교수는 당연히 김춘수 교수가 되었다.

2년동안 시간강사를 하면서 1969년 2월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즉 세칭 청록파 시인의 작품 연구인 ‘청록집을 통한 삼가 시인의 작품 연구’라는 제목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대구보다 고향 남해가 가깝고 친척과 친지들이 많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부산으로 내려올 때 김춘수 선생은 김정한 선생에게 간단한 소개장을 써주었다. 그 속뜻은 기회가 닿는 대로 부산대학교로 들어가야 할 것이므로 부산의 원로 교수인 요산 김정한 선생의 조언을 받을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양교수는 김춘수 선생과의 만남을 운명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어디에서고 한다. 양 교수보다 먼저 등단한 경북대 출신 시인들은 김춘수 선생이 서울서 발간되는 문예지의 추천위원이 되기전 박목월 시인에게 추천을 하면 ‘현대문학’에 김춘수 선생의 추천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서 박목월 시인의 이름으로 추천되어 데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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