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미완성 동양평화론
[경일칼럼]미완성 동양평화론
  • 경남일보
  • 승인 2020.03.0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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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엘리베이터가 운반해 주는 도쿄 타워 전망대에 올랐다. 여기저기 신사와 납골당을 볼 수 있고 빌딩 사이에 숲으로 둘러싼 절의 본당 뒤 즐비한 묘탑이 눈에 들어온다.

절 정문 대리석에 정토종대본산증상사(淨土宗大本山增上寺)로 새겼다. 종루에 범종이 걸렸는데 4개의 유곽에 20개씩 유두가 있고 공명 홈이 없다.

담을 따라 절 뒤로 이동하자 관람료를 받는 덕천장군가묘소(德川將軍家墓所)이다. 당대 최고 기술로 묘탑을 치장하여 국보로 지정되었다가 소화 20년(1945) 폭격으로 대부분 소실되어 해제되었다. 2대 秀忠公, 6대 가선공, 7대 가계공, 9대 가중공 12대 가경공, 14대 가무공의 묘탑이다.

1세기에 걸친 혼란시대를 종식시킨 풍신수길이 임진왜란을 일으켜 사망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는 국내에 남아 비축했던 힘으로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로 정적들을 제압하고 일본을 통일한다. 에도에 막부를 열어 쇼군(將軍)이 되고 아들 히데타다(秀忠, 수충)에게 쇼군을 물려준다.

풍신수길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바늘장사를 하다 노부나가 눈에 띄고, 일본을 통일하여 관백의 자리에 올라 태양의 아들이라 자칭하며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그 결과 조선은 150만결의 토지가 50만결로 황폐해졌고, 죽은 자를 헤아릴 수 없고, 9만 명의 포로 중에 송환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풍신수길 가족은 안녕했을까.

그는 원로들에게 아들 풍신수뢰를 부탁한다고 유언을 하지만, 오사카성을 지키고 있는 풍신수뢰는 덕천가강의 종전 제안을 받아들이고 해자를 메운다. 풍신수뢰는 적장의 말을 대책 없이 믿다가 성은 함락되고 만다. 천수각 뒤쪽으로 내려가면 다이묘의 문장이 새겨진 돌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구석에 초라한 비석이 있다. 풍신수뢰·정전자인지로 새겼는데 모자가 자살한 장소이다.

풍신수길은 2대에 절손되고, 덕천가강 후손은 쇼군으로서 영예를 누린다. 이는 울지 않는 새를 두고, 풍신수길은 “울게 만들어라” 덕천가강은 “울 때까지 기다려라”라는 인물 비교로 설명될 수 있을까!

상대의 의중을 길게 읽고 넓게 보는 눈을 가져 인내심의 달인으로 묘사(描寫)되는 덕천가강은 과연 진주만을 기습하자 B-29에 본토를 초토화로 돌려받고 후손 묘탑이 파손될 것을 내다보지 못했단 말인가.

안중근은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간도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하고, 1908년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300여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국내진입작전을 벌여 두만강 근처 홍의동과 신아산에서 승리를 거두고, 동지 11인과 단지동맹을 맺으며 대일항쟁을 다짐한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와 수행원 3명을 권총으로 저격하고 “코레아 우라”를 외친 뒤,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된다.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40일 만에 사형이 집행된다.

안 장군은 쫓기듯 진행되는 재판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 집필에 매진한다.

‘대체로 보아서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에 분명히 정해져 있는 이치이다(夫合成散敗萬古常定之理也)’로 시작되는 서문과 전감을 작성하고 현상, 복선, 문답은 제목만 적어놓고 미완으로 남았다.

유족은 일제 추격을 피해 러시아령 목단강시와 수이펀허 사이에 자리 잡는데, 일본 밀정이 끈질기게 따라와 개울가에 물놀이 하는 7살 장남 안문생을 독이 든 과자를 먹여 죽였다. 어머니와 부인의 죽음에 날짜조차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2020년 3월 26일은 장군 안중근 순국 110주기이다.

가족과 가문의 안위를 뒤로하고 ‘동양평화’라는 대의를 위하여 몸 바친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는 것, 동양평화론 완성이 아닐까!
 
안명영(수필가·전 명신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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