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반세기 전, 그해 일들
[경일포럼]반세기 전, 그해 일들
  • 경남일보
  • 승인 2020.03.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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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이라면, 서기 1970년을 말한다. 그때 내 나이는 우리 나이로 열네 살이었다. 신종 코로나인 역병이 온 세상에 창궐하고 있는 이즈음에, 나는 꼭 50년 전의 일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고는 한다.

1970년이 되자마자 정부에서는 ‘대망의 70년대’ 운운 하면서 희망의 풍선을 띄워 올렸다. (그땐 어려서 몰랐지만, 이듬해 대선을 위한 사전 홍보의 전략이었다.) 아직 후진국인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난쟁이에 지나지 않았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랄까? 엑스포 70이 도쿄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일본의 경제적인 영향권에 놓여 있던 우리나라도 덩달아서 관심이 고조되었었다. 그때 나는 영화 「엑스포 70 동경작전」을 보기도 했다. 내용이 액션과 반공이 결합된 범속한 영화에 지나지 않았지만, 영화의 일부를 도쿄(현지)에서 촬영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기도 했다.

그해는 축구가 엄청난 열기를 뿜던 한 해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버금가는 열기였다고나 할까? TV에서는 4년 전의 런던 월드컵 중에서 북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방송했다. 영국과 서독의 결승전은 지금도 기억이 뚜렷할 만큼 최대의 명승부였다. 곧 이어서 멕시코 월드컵이 열렸다. 브라질은 펠레 등의 화려한 공격수로 구성된 역대 최강의 팀이었다. 브라질의 우승은 예견된 일이었다. TV 방송은 서너 달 동안 온통 월드컵 녹화 중계로 가득 찼다.

또 TV드라마 일일 연속극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동양방송의 「아씨」는 그해 3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방송되었다. 이 드라마는 서울과 부산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어느 여자의 일생. TV 대수가 백만이 안 되던 그때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나는 그 드라마의 장면 중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적지 않다. 어딘가에 남아 있을 극본을 열람할 수 있거나 복사할 수 있다면, 이에 관한 논문을 쓰고 싶다.

날이 더워지면서 돌발의 사태가 발생했다. 경남 창녕의 한 상갓집에서 내 놓은 돼지고기에서 비롯된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확산해 적잖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사람들은 여름 내내 콜레라의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이 역병은 어른들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어리니까 철이 없고, 철이 없으니까 어리석었던 거다. 8월에는 말레이시아에서 메르데카배 축구대회가 열렸다. 나는 늦은 밤에 옥상에서 모든 경기의 중계방송을 휴대용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조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멀리 떨어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입니다. 우리나라가 대망의 우승을 달성했지만, 더 값진 것은 예선전에서 일본 축구의 영웅인 가마모토가 있는 국가대표 팀을 격파했다는 데 있었다. 9월 초에는 런던 월드컵의 최고 영웅이었던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를 초청해 두 차례 경기를 가졌다. 국가대표 2진 백호 팀은 5대0으로 졌지만, 1진 청룡은 그의 소속팀과 붙어 1대1로 비겼다. 그는 한국에서 세 골을 넣고 돌아갔다.

이후 바로 추석이 있었다. 우리 집에는 명절 때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다. 아버지가 항렬이 높았기 때문이다. 추석을 위해 여름에 포도주를 담고, 구정을 위해 동동주를 만드는 누룩을 발효시켰다. 9월 15일 추석날, 고등학교에 다니던 사촌 형이 다락방에 있던 포도주를 몰래 마시고는 수채에 구토를 했다. 내 부모가 콜레라인줄 알고 대경실색을 했다. 사촌 형이 이실직고하지 않았다면, 강제로 병원에 갈 뻔했다. 때 우리 집에 순둥이 마당 개가 있었는데 포도주의 포도 껍질을 맛있게 먹더니 술에 취해 세칭 ‘뗑깡(생떼)’ 내지 난동을 부렸다. 개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 것은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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