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걷자생존'
[경일춘추]'걷자생존'
  • 최창민
  • 승인 2020.03.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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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놀루와(협)대표)
자동차 탐험가이자 사진가인 나의 의좋은 아우 함길수의 책과 사진을 보면 유난히 길이 많다. 아프리카 탐험에서 자동차가 지나간 뒤의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먼지 자욱한 신작로, 아련히 굽은 철길에 기적을 울리며 사라지는 구식 기차와 그 뒤 남겨진 가녀다란 낡은 철길, 그가 좋아하는 길이다. 그의 책을 보면 나도 떠나고 싶어진다. ‘소유하지 않으면 떠날 수 있다’는 그의 책이 있다.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많은 소유다. 함길수가 길을 떠나게 된 동기도 길처럼 아련하다. 학창시절 해외로 입양을 떠나는 아이를 양부모에게 데려다 주기 시작한 것에서였다. 그 길에서의 수없는 이별과 눈물. 그 후로 소유에서 벗어나니 길이 보였고 그 길은 그의 삶이 되었다.

나는 걷기를 좋아하여 도보여행을 즐겨한다. 섬진강 종주 후에 곧 바로 지리산둘레길 완주에 나섰다. 이탈리아 여행도 도시의 골목길을 무던히 걸었던 시간이었다. 최근까지 써 왔던 ‘마을소요’도 결국 글을 쓰기 위한 걷기였고 걷기 위한 글쓰기였다. 이 둘은 늘 쌍둥이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읍내에 살면서 이른 아침마다 걸었던 나의 산책길은 섬진교를 건너 광양의 다압면 강변도로를 돌아오는 코스였다. 평사리로 이사 온 후에도 두 가지의 산책길을 갖게 되었는데 나는 그 길에 이름까지 붙였다. ‘달빛 향기로운 길’과 ‘별빛 재잘거림 길’이다. 대략 40분가량 소요되는 이 길에서 나의 대부분의 책을 썼다. 새와 바람과 이슬과 하늘과 달빛과 별빛 그리고 나뭇가지가 들려주는 말을 받아 적었다. 어쩌면 이들의 말을 받아 적으려 산책을 나서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나의 글과 책들은 결국 길에서 발로 쓴 것들이다.

살아 있는 것은 걷는 것이요 걷는 것은 사유하는 것이며, 사유하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이다. 사유는 글로 귀결되었으며 글을 쓸 때에야 내가 살아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럼으로 걷는 것과 사유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하나의 개념으로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리산둘레길에서 나는 이것을 ‘걷자생존’이라 명명했다.

신은 두 발 가진 인간을 창조했다. 발바닥에서 시작된 사유의 물결은 두 다리와 척추를 타고 두뇌로 전달되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불행히도 오늘 날 청소년들은 걸으려 하지 않는다. 사유의 혈맥이 끊어져 결국 인공지능에 종속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걷는 것은 떠나는 것이다. 소유하지 않기에 떠날 수 있고 소유하지 않기 위해 떠나야 한다. 그러면 살 수 있다. ‘걷자생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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