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지구촌인가
누구를 위한 지구촌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20.03.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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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경상대신문 편집국장)
바다 건너 나라가 마치 바로 다음 골목에 있는 옆집처럼 친근하면서 모든 사람이 정보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회. 1945년 공상 과학 소설가였던 ‘Arthur Charles Clarke’(이하 클라크)가 당시 인공위성을 이용한 통신을 묘사하며 제시한 이상적인 미래상 ‘지구촌’의 개념이다.

지구촌 개념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데서 시작한다. 클라크는 발달한 통신으로 사람 간 정보 격차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의미 이상으로 역할하고 있다고 느껴왔다. 한 사람으로는 겨우 흙더미 한 수레만 옮겼을 것을 여러 사람이 나누면 산 하나를 거뜬히 옮기는 것처럼 빛나는 손길은 지구촌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얼어 죽는 수많은 유아를 위해 손수 뜬 모자들이나 신념을 가지고 모이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이 된 자원봉사자 등 많은 선의가 작은 화면 너머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지구촌에 대해 내가 생각해온 개념이 잘못되었나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3일 전에는 한 아시안 여성을 밀쳐 버스에 타지 못하게 했다는 목격담이, 어제는 지하철에서 아시안 남성을 향해 삿대질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품고 있다고 악을 지르는 영상이, 오늘은 브루클린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아시안이 칼에 13번 찔렸다는 외신 기사를 보게 되었다. 같은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았을 때와 이탈리아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지구촌이라고 부르면서 유럽 개발로 촉발된 환경 문제, 하다못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탄 일에는 전 세계가 함께 이겨내자며 도움을 청하고 모금 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로 그 이면에 어떤 선민의식과 우월주의를 품고 있는지 아주 잘 드러났다. 지구촌이라는 단어는 이들을 위해서만 사용되고 있다.

뉴욕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하게 증가하자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많은 이들이 두렵고 피해를 보는 상황임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의 피해가 또 다른 가해에 대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약 3개월 뒤, 워킹홀리데이를 떠날 계획이었다. 젊음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세상을 보기 위해서. 코로나바이러스는 못해도 6월까지 유난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와중에 겨우 160cm 동양인 여성은 외국이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한 번씩 일어날 때마다 지구촌이 아니게 된다면, 그 단어에 어떤 힘이 실릴 수 있을까.

김예진(경상대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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