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재건 과정 기록한 영건의궤 번역
창경궁 재건 과정 기록한 영건의궤 번역
  • 연합뉴스
  • 승인 2020.03.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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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8번째 국역총서 발간
조선 순조(재위 1800∼1834) 대에 화재로 소실된 창경궁 건물 재건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도서가 번역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고문헌 국역총서 여덟 번째 책으로 1834년 태백산 사고본 ‘창경궁영건도감의궤’(昌慶宮營建都監儀軌) 번역본을 펴냈다. 창덕궁 동쪽 창경궁은 성종 15년(1484) 태종 상왕궁인 수강궁 터에 창건했다. 임진왜란으로 전각이 불타 복구했으나, 1624년 이괄의 난으로 다시 화마를 겪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화재가 일어났다.

1830년 8월 1일에는 창경궁 환경전에서 불이 났다. 당시 환경전에는 대리청정하다 세상을 떠나 발인을 앞둔 효명세자 시신이 있었다. 불은 자경전을 제외한 내전 건물뿐만 아니라 외전 영역에 있는 숭문당과 빈양문도 태웠다.

조정은 흉년이 들고 재정 상황이 좋지 않자 재건을 미루다 1833년 10월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도 화재 피해를 보자 곧바로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창경궁영건도감의궤는 1834년 4월까지 이어진 창경궁 재건 공사 과정과 투입 인력, 자원을 담았다. 앞부분에는 통명전·경춘전·양화당·함인정 그림을 수록했다. 번역본은 뒤쪽에 책을 영인해 실었다. 번역은 윤선영 국립고궁박물관 연구원이 했다.
 
정정남 박사는 해제에서 조선이 창경궁과 창덕궁 의궤를 각각 제작한 데 대해 “행정과 실무 인력 상당수가 중복으로 배치됐음에도 창경궁과 관련된 내용만 간추려 적은 것은 의도적”이라며 “공역 초기부터 물력과 재력을 철저히 구분해 혼동되지 않게 관리하는 전례에서 비롯한 것으로 조선시대 문서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이어 “창경궁은 재건 면적이 넓지만 창덕궁보다 빨리 지었는데, 창경궁에 공사 자재를 둘 수 있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넓었다”며 “반면에 창덕궁 공사 영역은 협소하고 지어야 하는 건물이 크고 복잡했다”고 분석했다. 지병목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창경궁영건도감의궤는 조선 후기 궁궐 중건 과정과 건축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사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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