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대구야 힘내라, 대구에 힘을 주소서
[경일칼럼]대구야 힘내라, 대구에 힘을 주소서
  • 경남일보
  • 승인 2020.03.1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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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실 (전 진주외국어고교장·신지식인 도서실장)
3월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찬 새 봄을 노래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반가운 새 봄을 맞이한 환희의 노래를 말이다. 그런데 분명 봄은 우리 곁에 왔지만 마음의 봄은 우리 곁에 오지 않고 마치 추운 겨울처럼 마음이 오그라진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것이 일상화 되어버렸고 서로를 위하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말았다.
 
가능하면 집콕 내지 방콕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의 장기화로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홈코노미족이 증가하면서 배달과 온라인서비스가 호황을 누리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코로나19 감염의 공포는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서 사람과 마주치기를 꺼리는 비대면 마케팅 방식인 언택트 소비도 각 가정에서 더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유통가나 금융계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언택트 마케팅이 활개를 치는 것도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현상이다. 이렇게 홈코노미족이 증가하고 언택트 마케팅이 활성화 되는것도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사람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럼 이 시점에서 대구상황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대구하면 떠오르는 표상이 무엇인가? 필자가 어렸을 때 대구하면 떠오르는 것이 3가지 있었다. 사과, 분지, 미인이었다. 사과는 대구에서 많이 수확되었고 분지는 학교에서 배웠고 미인은 미스 코리아 대회에서 대구출신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구는 그것만이 아니다. 대구는 지리적으로 영남의 중심지다. 세종은 즉위 하자마자 1419년 대구현 수성현 해안현 하빈현을 통합하여 대구군으로 승격했다. 1446년엔 대구도호부로 승격됐고 1601년에는 경상감영이 대구에 들어섰다. 동쪽에 환성산, 서쪽에 와룡산, 남쪽에 앞산과 비슬산, 북쪽에 팔공산에 둘러싸인 드넓은 분지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서 선동이 가장 안 먹히는 동네가 대구다. 앞에 나서거나 쓸데없이 말 많은 사람은 경멸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는게 대구 사람이다. 대구는 일제의 경제 침탈에 맞서 국채보상운동의 첫 횃불을 들어올린 곳이기도 하다. 반세기에 걸친 항일투쟁에서 가장 격정적으로 저항하고 가장 오랫동안 항거하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 대구 경북이다. 한국전쟁에서 공산당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영토를 끝까지 지켜낸 낙동강 방어선의 보루가 팔공산이다. 이처럼 나라를 수호하는 애국정신이 투철한 도시가 대구이고 대구 사람이다. 대구 경북은 원래 선비의 고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구가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신음하고 있다. 도시는 이동하는 차량도 없고 이동하는 사람도 없는 적막강산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성금과 물품을 기증하고 있고 자원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의료인들은 24시간을 환자 옆에서 지키고 돌보고 있다. 이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은 대구 코로나, 대구 봉쇄. 대구 사태, 대구 신천지 등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대구경북 사람들에게 폄하와 왜곡, 비하와 모욕, 망언과 망발을 서슴치 않고 내볕고 있어 오히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안일한 대처다. 특히 마스크 대란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장관도, 경제부총리도, 국무총리도, 대통령도 국민에게 사과를 했지만 시정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과는 시정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려면 사과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의 무능을 그래도 우리 국민들이 채워주고 있으니 대구야 힘내라 대구에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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