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부천사의 말없는 가르침
[사설]기부천사의 말없는 가르침
  • 경남일보
  • 승인 2020.03.1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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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 보호자입니다. 49제를 앞두고 연락드렸어요. 호스피스 병동에 너무 고마워서 기부를 하고 싶어요.” 올해 초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에서 임종을 맞은 환자의 유가족 A씨가 “한 생명의 존엄성 있는 죽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호스피스 의료진의 모습에 감동 받았다”며 호스피스 병동에 1억 원을 지정 기부했다. 그는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절대 본인의 신상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결국 1억 원을 전달하는 사진 촬영도, 기부금 전달식도 생략됐다.

호스피스 병동은 치료를 계속해도 건강을 회복하기 힘들어 마지막을 준비해야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찾는 곳이다. 일반 환자와는 마음가짐도, 접근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기부 한파’도 아랑곳하지 않는 기부천사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조건 없는 사랑은 분명 아름답다. 코로나19로 경기침체의 그늘이 곳곳에 드리워지며 여느 때보다 세태가 각박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선행을 보면 세상이 아직도 메마르지는 않았다는 희망이 생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기 것을 선뜻 내놓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기업이 거액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 기부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공동체의 온기를 더욱 높인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 자연재해 등 국가적 위기를 단합과 공공부조로 이겨낸 전통이 있다.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단합과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아직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는 갈 길이 멀다. 일부 유명인과 무명인의 큰돈 기부가 미담이 되고 있다. ‘존엄한 죽음’ 지키는 의료진을 향한 무명인의 기부사연은 우리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불경기와 코로나로 개인 기부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때일수록 콩 한 쪽을 나눠 먹는 정신이 필요하다. 나눔과 배려의 생활은 우리를 훈훈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로 가족을 떠나보낸 그 아픔을 감사로 승화시켜 호스피스병동에 1억을 기부한 ‘얼굴 없는 천사’의 말없는 가르침에 잔잔한 감동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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