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2]루벤스 하우스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2]루벤스 하우스
  • 박성민
  • 승인 2020.03.1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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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만큼 풍요로운 플랑드르 대가의 대저택
할아버지와 함께 우유배달을 하던 네로와 배달 수레를 함께 끌어 주던 강아지 파트라슈.

동화 ‘플란다스의 개’에 등장하는 주인공 네로는 그림 그리기에 천부적 소질이 있었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미술공부를 하지 못했다. 그저 하나뿐인 친구 파트라슈에게 마음을 의지해가며 언젠가는 루벤스와 같은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살아가는 아이다. 이런 네로가 가진 한 가지 소원은 앤트워프 성당에 걸려 있는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네로는 꿈에 그리던 루벤스의 그림 아래서 파트라슈와 함께 숨을 거둔다. 비극적인 결말로 어린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이 이야기는 네로가 그토록 동경하던 화가 루벤스의 도시 앤트워프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이곳에서 루벤스를 만나보자.

 
루벤스가 50대 때 그린 자화상.
◇ 원조 ‘엄친아’ 루벤스

훌륭한 가문 출신에 수려한 외모와 여러 학문에 능통하여 지성까지 겸비한 한 남자. 이것도 모자라 여러나라의 외국어 능력과 출중한 그림 실력으로 유럽 전역에 그 이름이 알려져 나라간의 외교까지 담당했던 그야말로 원조 ‘엄친아’. 벨기에가 자랑하는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신은 공평하다고 하셨는데 루벤스에게만은 예외를 둔 모양이다.

루벤스의 가문은 본래 신교를 가지고 있다가 벨기에 지역이 강력한 스페인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면서 독일 쾰른으로 이주 했다. 루벤스는 그의 가족들이 신교 박해를 피해 다니는 과정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앤트워프로 돌아온 어린 루벤스는 미술 공부를 시작하면서 당시 화가 지망생들에게 유행처럼 여겨졌던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성공적인 수학을 마친 그는 이탈리아 귀족의 전속 화가로 활동하였고, 다시 앤트워프로 돌아온 이후에도 스페인과 프랑스 왕실을 오갈 만큼 이름난 화가가 되어 있었다. 1639년에는 스페인 펠리페 4세의 외교 사절단으로 참여하여 영국과 스페인 양국의 평화 협정에 큰 공을 세우며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부여 받는 등 평범한 화가로써 누릴 수 있는 호사를 훌쩍 넘어 커다란 명예를 거머쥐었다.



◇루벤스와 렘브란트

루벤스는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와 자주 함께 언급 된다. 둘은 같은 플랑드르 지역에 살기도 했지만 ‘바로크’시대라고 일컬어지는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이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로는 루벤스가 렘브란트보다 30년 일찍 태어나 화가로써의 길을 먼저 걸으면서 쌓은 명성과 그 실력을 렘브란트가 동경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두 거장은 서로 교류나 왕래가 있었을까? 여러 나라로 옮겨 다니며 활동했던 루벤스와는 달리 렘브란트는 주로 암스테르담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는 알았을지언정 두 화가가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동시대에 활동했던 두 화가이지만,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작품에서 여러 차이점을 보인다. 첫째로는 주제 선택에 있어서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데, 작품의 70%가 초상화였던 렘브란트와는 반대로 루벤스의 주된 이야기는 신화와 종교와 관련된 것이다. 특히 가톨릭을 신봉하던 벨기에에서 활동했던 루벤스는 주문받는 작품의 대부분이 성당 내부를 장식할 제단화 등을 위한 종교 관련 주제였다. 이 때문에 교회나 왕족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루벤스의 작품은 부르주아 계층의 수요를 담당했던 렘브란트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규모적인 면이나 주제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이름났던 두 화가가 이토록 다른 방향으로 작업을 했으니, 오늘날 두화가의 작품과 마주 할 수 있는 우리는 그들이 내는 각자의 목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루벤스하우스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관광객들.
◇루벤스 하우스

루벤스와 그의 아내 이사벨라가 1610년 구입한 저택은 앤트워프의 중심에 위치해있다. 시내 한복판에 당당히 자리하며 이탈리아 귀족들의 저택이나 궁전을 일컫는 팔라초(palazzo)의 모습을 한 이 집은 당시 앤트워프 사람들에게 보기 드문 고급 저택이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수년간 공부하며 고대 로마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을 접한 루벤스는 그의 안목과 예술적 감각을 자신의 저택에 적용해 화려함을 뽐내고자 했다.

밀려드는 주문을 전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루벤스는 공방으로 쓸 별도의 공간을 저택 구성에 추가했다. 공방은 그의 제자들과 보조 도우미들이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는 대규모의 공간으로 많은 주문량 때문에 하루 종일 북적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루벤스 대부분의 작품들이 탄생 되었으며 공방의 규모는 유럽에서 가장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벤스 같은 이름 난 화가들은 많은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초안과 작품 마무리는 화가가 완성 하되 나머지 부분은 공방에서 수련중인 제자, 도우미 등이 함께 참여하여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이렇다 보니 루벤스 공방에서 오랜 세월 수련했던 제자나 동료들은 루벤스와 매우 흡사한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고, 오늘날 그들의 개인 작품이 종종 루벤스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루벤스는 작품 활동에만 매진했던 것이 아니라 회화, 조각 등의 수집에도 열의를 보였다. 그는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단연코 최고라 불리만큼 다양하고 진귀한 미술품들을 보유 했던 이름난 수집가이기도 했다. 루벤스는 그가 운명을 달리하는 1640년까지 약 30년 간 이 저택에 거주 하며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맞이했다.

◇오일 스케치와 자화상

루벤스는 두 손바닥 정도 되는 크기의 오일 스케치를 많이 그렸다. 한눈에 보기 힘들 정도의 대형 작품을 주로 그렸던 그는 실제 작업을 진행하기 전에 구도나 인물 배치 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샘플을 먼저 제작했던 것이다. 스케치는 그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보여주며 작품의 진행여부를 승인 받거나 수정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또한 이 작은 스케치들은 루벤스의 공방에서 그를 도와 그림을 마무리 하던 견습생에게도 좋은 교육 자료가 되었다. 이 방식은 이탈리아에서 모델리(modeli)라고 불리던 것으로 루벤스로 인해 플랑드르 지역에 도입 되었다.

유화로 40여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와는 달리 루벤스는 겨우 네 점의 자화상만을 남겼다. 우리는 두 사람의 자화상에서도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 할 수 있다.

렘브란트는 그림 속의 자신을 대개 근엄한 화가의 모습으로 나타냈으며, 그의 인생이 내리막길을 달리는 말년에는 주름살 가득한 세월의 흔적을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동정심과 공감을 유발한다. 반면에 루벤스의 자화상에는 표정에서 느껴지는 자신감과 기품 있는 자태만이 표현 되어 있을 뿐 자화상만을 가지고는 루벤스가 화가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다. 루벤스 하우스에 소장 되어있는 자화상은 루벤스가 53세이던 1630년, 첫째 부인 이사벨라가 죽고 헬레나 푸르망과 재혼할 당시 그려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나저나 헬레나가 루벤스와 재혼 할 당시 나이가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고 하니 이 남자가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으랴!



주소: Wapper 9-11 2000 앤트워프

홈페이지: https://www.rubenshuis.be/en

운영시간: 10:00-17:00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8유로, 12세 이하 무료



 
루벤스하우스
 
 
루벤스의 아내 헬레나 초상화의 초상화. 독일 바로크 화가 Jan Boeckhorst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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