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13) 영광과 비운이 교차한 ‘눕체’(상)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13) 영광과 비운이 교차한 ‘눕체’(상)
  • 경남일보
  • 승인 2020.03.2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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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돌이 쏟아지는 루트…끝없는 도전의 승리

1988~1989년 북서봉 겨울철 세계 초등 도전
가까스로 세운 캠프 악천우에 무참히 쓰러져

2캠프 눈 앞 펼쳐진 최고봉 풍광에 벅찬 감동

 

베이스캠프에 모인 대원들
“눕체를 겨울 시즌 세계에서 최초로 올라 가슴에는 영광을, 그러나 고향으로 향하는 손과 발은 동상으로 고난의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조형규 원정대장.

경남산악연맹 88-89눕체 북서봉 동계원정대(대장 조형규)는 1988년 12월 22일 오후 2시 5분 배현철·전봉곤·김화곤·오세철 대원이 눕체 북서봉(7855m)을 세계에서 최초로 겨울 시즌 초등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 폭설이 내리는 악천후와 극심한 동상을 입고 거둔 이 영광은 알피니즘의 끝없는 도전 정신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한국 해외 원정사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등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남연맹, 불가능에 도전장 “네팔로”

경남산악연맹(회장 이순석)은 1988년 가을 조형규 대장을 중심으로 조형규(대장)·장진오(부대장)·배현철(등반대장)·윤현종(행정)·김화곤(수송)·오세철(촬영)·정성재(기록)·이종광(장비)· 전봉곤(장비)·정갑진(식량)·박희택(식량) 등 11명으로 구성된 ‘88~89한국눕체동계원정대’를 파견했다.

장진오 부대장과 박희택 대원 등 4명의 선발대는 10월 19일 홍콩을 거쳐 네팔 카트만두로 출발했다. 선발대는 항공으로 보낸 화물을 찾고 현지에서 식량과 장비를 구입, 셰르파 고용 및 행정 처리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거의 한 달 만인 11월 12일 도착한 본대는 짐을 재포장하고 11월 15일 2대의 전세기로 루크라로 향했다. 11월 15일 카라반을 시작한 원정대는 보름 만에 모든 대원과 셰르파들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11월 29일 무사 등정을 기원하는 라마제를 올렸다. 12월 1일 본격적인 루트 공략에 나섰다. 컨디션이 좋은 대원들과 셰르파들은 1캠프(5800m) 건설에 나섰다. 빙하를 통과하고 푸석바위로 경사진 너덜지대를 5시간 이상 힘겹게(거의 네발로 오름) 오른 후 또다시 300m 정도 암벽(약 60도 경사)을 등반해야 했다. 암벽이 끝나면 칼날 능선처럼 예리한 설벽을 200m 올라야 하는 첫 등반부터 쉽지 않은 코스였다. 대원들은 깎아지른 칼날 암릉 위에 겨우 텐트 2동을 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1캠프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소변 등 생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정 로프를 확보해야 가능했을 정도였다.



셰르파도 포기한 난코스…포기는 없다

고소적응을 마친 대원들은 쉴새 없이 식량과 장비를 위로 져 올렸다. 12월 3일 3일에 걸친 노력 끝에 2캠프(6800m)까지 고정 로프를 깔았다. 2캠프 바로 앞에는 눕체 등반에서 가장 최난 루트로 얼음과 바위가 혼합된 40m의 직벽이 버티고 있었다. 떨어지는 얼음과 돌은 ‘쓩, 쓩’ 소리를 내며 대원들을 위협했고, 사기를 꺾었다. 1977년 일본 원정대 역시 이 구간을 넘지 못하고 왼쪽 크레바스 지대에 사다리를 이용해 돌아갈 정도로 힘든 구간이었다. 대원들과 셰르파들은 며칠간 루트 공략으로 체력이 떨어져 휴식을 취했다. 셰르파들은 더 쉬겠다고 했지만 대원들은 그들을 남겨두고 2캠프를 건설하기 위해 떠났다.

오세철 대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솔직히 하루 더 쉬고 싶었다. 하지만 등반 일정이 길어지면 경비가 더 들 수밖에 없다. 또 언제 변덕을 부릴 줄 모르는 겨울철 히말라야다. 좋은 날씨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셰르파들을 남겨두고 대원들을 위주로 등반을 시작했다.”

 
1캠프 구간을 오르는 대원과 칼날 같은 설릉을 등반하고 있는 대원



정상으로 가는 교두보 확보

12월 8일 정상으로 가는 교두보 역할을 할 2캠프를 리지(ridge, 능선)에 건설했다. 이곳은 히말라야 최고의 전망을 볼 수 있었다. 왼쪽에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와 세계 4위봉 로체(8516m)가 서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캉테카(6779m)와 탐세르쿠(6608m), 뒤편으로 푸모리(7145m), 초오유(8201m)가 호위하듯 솟아 있었다. 대원들은 잠시 피로를 잊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김화곤 대원은 “어렵게 올라왔지만 2캠프에서 바라본 에베레스트, 로체, 초오유, 푸모리 등은 정말 잊을 수 없는 파노라마였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다. 다시 볼 수 없겠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벅찬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12월 10일 이제 3캠프(7100m)로 가는 길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눈처마가 생긴 능선을 통과해야 했다. 만약 눈처마가 무너진다면 시꺼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에베레스트 아이스폴 지대로 떨어지고 만다. 대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천천히 나아갔으며 이틀간의 공략 끝에 박스 텐트 2동을 설치하고 물량을 올리기 위해 2캠프로 물러섰다.



겨울 등반 우려가 현실로…폭설

간간이 내리던 눈이 폭설로 변하고, 밤사이 강한 바람과 눈보라가 텐트를 통째로 날려버릴 듯한 기세였다. 날씨가 악화하고 있었다. 겨울 등반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꼼짝없이 텐트에 발이 묶인 대원들은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12월 14일 날씨가 좋아지자 3캠프로 짐을 수송하고 4캠프(7400m)를 만들기 위해 눈길을 헤쳐나갔다. 밤새 내린 눈을 뚫어야 했기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가까스로 3캠프에 도착한 대원들은 망연자실했다. 텐트가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텐트를 보수하고 한 동을 더 설치하고 2명의 대원들과 셰르파는 15일 밤늦게 4캠프까지 고정 로프를 설치하고 돌아왔다. 4캠프로 식량과 장비를 옮기면 다음 날 정상 공격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사진제공=원정대

눕체 웨스트 북서능(N.W.peok)등반 루트도


눕체(Nuptse)

에베레스트를 중심으로 남쪽에 있는 산을 로체(Lhotse), 북쪽에 있는 산을 촐라체(Cholatse), 서쪽에는 눕체(Nuptse)가 우뚝 솟아 있다. 눕체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높이 26위 고봉으로 에베레스트 남서쪽 약 5.6㎞에 있다. 1961년 영국원정대 눕체 빙하 5180m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남벽 중앙 능선에서 정상으로 향했다. 5월 11일 6400m에 5캠프를 설치하고 5월 15일 8캠프(7225m)에 진출했다. 다음날 데니스 데이비스가 셰르파 타시가 정상으로 이어지는 꿀르와르를 넘어 오후 4시 15분 처음으로 정상에 섰다. 5월 17일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크리스 보닝턴이 제2등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취지문

경남산악연맹은 창립된 지 불과 10년도 채 못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철저한 준비와 강도 높은 훈련을 오로지 정신 하나만으로 뭉쳐 노력하여 왔습니다. 우리 원정대는 대망의 눕체봉(7855m)을 등정하는 계획을 비로소 실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과 다져진 팀워크로 그곳의 기후 조건과 그 무엇에도 대응할 등반 작전 등이 등정 성공의 열쇠가 되리라 생각되어 우리 원정대원 전원은 하나가 되어 이에 대비하여 훈련에 임하였던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희 대원들은 이 짧은 경력으로 힘차게 밀고 나가면서 88 서울올림픽의 성공과 88 한국에레베레스트-로체 등정의 성공과 눕체봉 등정이라는 낭보가 온 국민과 함께 경남산악계에 보내드리고자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19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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