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단성 겁외사·성철스님 순례길로 봄마중
산청 단성 겁외사·성철스님 순례길로 봄마중
  • 원경복
  • 승인 2020.03.2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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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보호 위해 조성한 성철공원(묵곡생태숲)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집안의 장남이자 한 가정을 꾸린 가장이었던 성철 스님은 “중이 안 되면 죽을 것 같다.”는 말로 마지막까지 반대하던 아버지를 설득했다 한다.

그 깊은 뜻을 속가의 삶을 영위하는 중생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20대 청년시절의 성철스님이 수행을 위해 지리산 대원사로 향하며 걸어간 발자취를 잠시나마 느껴 볼 수는 있을 장소가 마련돼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낭을 둘러멨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성철스님 생가 율은고거가 있는 산청군 단성면 겁외사에 주차를 하고 방향을 가늠해 본다. 지난해 가을 성철스님을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성철스님 순례길(양천 엄혜산 생태길)’이 오늘의 목적지다.

겁외사~엄혜산 아래 생태길~신안면 원지마을로 이어지는 이 길은 방문객을 숲과 사색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겁외사에서 순례길 초입까지 이어지는 1㎞ 남짓의 구간은 시멘트 포장길이라 다소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부지런히 발을 놀려 강변쪽으로 다가서면 강바람과 함께 잔물결이 반짝이는 양천강이 눈에 들어오면서 상쾌함이 배가 된다.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양수장을 기점으로 잘 정돈된 걷기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경호강의 빼어난 풍광이 탁 트인 시야에 한가득 들어온다. 홀로 서서 시간이 느려진 듯 느긋이 움직이는 백로와 옹기종기 모여 연신 자맥질을 하는 오리떼가 자못 정겹다.

오후에 들어서면 나무데크길 거의 전 구간에 걸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쬔다. 탐방로 중간 중간에는 의자와 지붕이 마련된 쉼터가 있어 휴식을 취하기 안성맞춤이다.

이 길의 백미는 원지마을에 도착하기 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전망대다. 234m 높이 엄혜산 자락의 중턱에 위치한 이 전망대에 올라서면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겹겹이 쌓은 산들이 병풍처럼 늘어선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는 웅석봉과 둔철산, 백마산도 눈에 든다.

고산 준봉의 준엄한 모습과 도도히 흐르는 경호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니!

전망대에서 내려와 원지마을로 향하는 길은 분위기가 반전된다. 이제 제법 따끔해 지는 햇살을 모두 가릴 만큼 치솟은 대나무숲이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전망대를 오르며 조금 피곤해진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순례길은 겁외사에서 원지마을 강변 둔치 공터까지 약 2.5㎞ 정도다. 엄혜산 구간에 다소의 계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지라 왕복하는데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원지마을에서 죽전마을 인근까지 조성된 뚝방길과 데크길을 더 걸어볼 수 있다. 원지마을~죽전마을 뚝방·데크길이 왕복 1시간 정도 걸리니 성철스님 순례길과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왕복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율은고거와 겁외사·성철 공원(묵곡생태숲)

성철스님 순례길을 걷고 돌아오면 성철스님 생가 율은고거가 있는 겁외사와 그 맞은편에 조성된 성철공원(묵곡생태숲)을 둘러봐야 한다.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에 걸쳐 조성된 성철공원은 14만2000㎡ 규모를 자랑한다. 조성 당시 묵곡생태숲으로 불리던 이곳은 최근 들어 성철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은행나무숲과 습지생태원, 잔디광장 등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쉬이 걸으며 바라볼 만한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산책로 곳곳에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있어 이 나무들의 모습과 이름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관찰로를 따라 걷다보면 넓은 공원의 규모를 몸소 느낄 수 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얼굴을 간질인다. 갈대가 흔들리며 바람이 지나는 모습을 형상화 해 준다.

간혹 마주치는 젊은 부부와 이들을 똑 닮은 작은 아이가 함께 걷는 모습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밝은 표정까지 함께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생태숲 한 켠에 마련된 습지생태원까지 눈도장을 찍고 겁외사로 발걸음을 돌린다.

성철공원은 남강댐 상류 지역의 수자원 보호와 겨울철 거센 모래바람에 시달려야 했던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숲이라고 하니 그 좋은 의미가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겁외사는 일주문이 없는 대신 커다란 기둥이 누각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경건한 마음을 안고 안으로 들어서면 성철스님의 동상을 가장 먼저 마주할 수 있다.

대웅전 외벽은 석가모니 대신 눕지 않고 수도하는 장좌불와 8년, 토굴 수행 10년 등 출가에서 입적 후 다비식까지 성철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동상 뒤편 생가에는 부유했던 그의 집안 내력과 공부방을 재현해 놓았다.

생가는 부친인 이상언 옹의 호를 따 율은고거라 부른다. 율은고거 앞마당에는 최근 세워진 비가 있는데 이 비는 ‘일원상’이라고 한다. 190cm 높이의 성철 대종사 일원상 비는 앞면에 일원상(0)이 뒷면에는 ‘성철 스님 출가송 조성문’이 새겨졌다. 앞면 일원상 아래 동판에는 성철 스님 출가 당시를 상징한 두루마기와 고무신, 책보자기가 조형됐다.

조형물을 보니 새삼 젊은 시절 스님이 걸어갔을 순례의 길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계층과 사상, 종교의 다름을 넘어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정신으로 “오직 참선하라”고 말씀하셨던 스님의 큰 뜻을 잠시나마 마음에 담아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원경복기자

 

산청군 단성면 겁외사
겁외사 성철스님 동상
성철스님 순례길은 겁외사~엄혜산 아래 생태길~신안면 원지마을로 이어진다. 햇살 따스한 데크길은 경호강을 바라보는 탁 트인 풍광도 품었다.
산청군 단성면 묵곡생태숲
성철스님 순례길 자락에는 시원하게 뻗은 대나무 생태숲도 조성됐다.

 
성철스님 순례길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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