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4]여항저수지 둘레길과 별천계곡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4]여항저수지 둘레길과 별천계곡
  • 경남일보
  • 승인 2020.03.2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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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바람소리 가득 봄 마중하고 오는 길

◇함안차사의 고장, 함안

조선 성종 때 경상도 함안에 절세 미녀가 있었다. 미녀의 이름은 노아(蘆兒)인데, 중죄를 지은 노아의 부친을 치죄하기 위해 중앙에서 판관을 내려 보냈다.

노아는 부친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기생이 됐다. 매혹적인 미모에다 한시까지 지을 정도로 학식도 뛰어났다. 판관이 내려오면 노아는 형방에 돈을 써 판관 모시기를 자청했고, 판관은 노아의 매력에 반해 그의 부친을 벌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같이 판관들은 노아의 품속에서 녹아버리는 전철을 밟았다.이렇게 되자 조정에서는 강직함과 엄격함으로 이름 높은 최모 판관을 함안으로 내려 보냈다. 최 판관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은 노아는 함안에서 40리 떨어진 칠원 영포역으로 가서 뇌물을 주고 역장 내외를 구워삶았다.

그러고는 분기 없는 얼굴에 소복을 입고 시골 아낙네가 어사의 행차를 구경하는 흉내를 내며 역참의 부엌과 마당을 오갔다. 이러한 노아를 보고 반한 최 판관은 그날 밤 노아와 함께 황홀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밝아오는 아침을 아쉬워하던 판관은 “내가 죽은들 너를 잊을 수 있으랴”고 실토했고, 노아는 먹실로 판관의 이름을 자기 팔뚝에 새기게 했다.관아를 찾은 판관은 노아와 아비를 잡아들여 죄를 물었다. 노아는 공초(죄인을 신문한 내용을 적은 문서)를 보시고 벌을 내려달라고 읍소했다. 공초에는 아비의 억울한 사연이 적혀 있었고, 별지에는 지난밤 자신이 영포역 여인에게 써 준 시가 쓰여 있음을 보고 판관은 깜짝 놀랐다. 그때사 판관은 노아의 술수에 빠진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는 노아와 부친을 옥에서 풀어준 뒤 와병을 구실로 사표를 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관직을 버리고 노아와의 사랑을 선택한 최 판관을 일컬어 ‘함안차사(咸安差使)’라 불렀다.

‘함주지’에 실린 ‘함안차사’는 부패한 관리를 조롱하고 풍자하는데 쓰이고 있지만 조선초 이성계와 이방원 부자의 권력투쟁에서 생겨난 ‘함흥차사’에 비해 훨씬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냄새가 난다. 함안차사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함안에는 미인이 많다. 미인은 아름다운 풍경을 끼고 태어난다. 함안의 빼어난 풍경을 만나기 위해 필자의 가족과 함께 별천계곡, 여항저수지 둘레길을 찾았다.

 


◇여항저수지 둘레길

먼저 찾은 곳은 여항저수지 둘레길이다. 총 2.9km인 둘레길은 주서교에서 출발했다. 출발점에서 200m마다 이동거리를 표시해 놓은 표지판이 서 있어, 탐방객을 기다리고 있는 표지판과 인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500m 정도 걸어가자 여항산 팔색조 포토존이 반겨 주었다. 다채로운 털색을 가진 아름다운 새가 여항산에 서식한다고 하니 꼭 한번 보고 싶었다. 1km 정도 가니 금계정이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자에서 바라본 여항지의 물빛은 그야말로 옥빛이다. 옥색물빛에 반짝이는 윤슬이 정말 아름다웠다.

지금까지는 주로 데크길이었는데, 금계정부터 둑길까지는 자갈길이었다. 자갈을 밟자 어린 시절 자갈 깔린 신작로를 걸어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제방길을 지나 2km 지점부터는 호젓한 소나무 숲길로 이어져 있었다. 호수와 참 잘 어울리는 길이다. 길섶에는 제비꽃과 큰개불알풀들이 정겹게 맞아주었고, 모퉁이마다 진달래꽃이 반겨주었다. 멀지않은 곳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짝을 찾느라 목울대를 돋우고 있었다. 2.6km 정도 가니 호숫가 전원주택들이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었다. 꽃빛과 새소리, 그리고 온 세상이 유난히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때가 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9km 주서교에서 여항저수지 둘레길은 끝이 났다. 좀 짧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호수와 숲길이 어우러진 명품 둘레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봄은 왔지만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항저수지 둘레길에서 진정한 봄을 맛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정말 기쁘다. 다시 주서교를 지나 100m 정도 걸어가자 여항산 둘레길 입구가 나타났다.

여항산 둘레길은 총 길이가 14km나 된다. 여항산 산자락에 임도와 옛길을 이어서 만든 여항산 둘레길은 4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1구간 단풍길(7.7km의 임도길), 2구간 소나무숲길(3.2km), 3구간 별내길(1km), 4구간 치유의 길(2.1km)로 테마를 붙여 놓았다. 여항산 전체 둘레길은 다음 기회에 트레킹하기로 하고, 별천계곡과 둘레길 2구간인 소나무숲길을 트레킹 하기로 했다.


 

◇별천계곡과 소나무숲길

외암초등학교 별천분교장을 지나자 곧 바로 별천계곡에 닿았다. 조선시대 함안 군수를 지낸 한강 정구 선생이 이곳에 와서 유람할 때, 양천(버드내)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름을 별천계곡이라 붙였다고 한다. 당나라 시선 이백이 쓴 시 ‘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에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란 구절이 나오는데, 인간세상이 아닌 신선이 살만한 곳에 붙인 이름이니 별천계곡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별천계곡 입구에 닿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6.25 격전 함안민안비’였다. 6.25 때, 함안 여항지구의 격전지였던 여항산과 서북산 전투에서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고 그 고귀한 뜻을 후손들에게 되새기기 위해 세운 비다. 이처럼 아름다운 곳에도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별천계곡으로 들어서자 너럭바위가 깔린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계곡 옆에 지어놓은 여강재 정자, 주변 풍경을 보니 과연 별천지라고 불린 만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별천계곡을 탐방한 뒤, 여항산 둘레길 2구간인 소나무숲길을 트레킹했다. 둘레길 양켠으로 나 있는 소나무 향기가 또 하나의 별천지를 느끼해 해 주었다. 약수터산장 뒷고개에서 되돌아오는 길, 저물녘 근처 절에서 들려오는 범종소리에 잠시나마 번잡한 생각들을 씻을 수 있었다. 향기로운 자연을 가슴에 담고 집으로 오는 길, 낙화놀이로 유명한 무진정에 둘러선 나무들이 효자담 물밑 깊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저녁을 맞이하는 모습이 한 폭의 아늑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박종현 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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