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14)영광과 비운이 교차한 ‘눕체’(하)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14)영광과 비운이 교차한 ‘눕체’(하)
  • 경남일보
  • 승인 2020.03.2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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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정상” 한마디에 수많은 사연이 눈물로

날씨에 물러선 1차 공격조…2차 공격에서 정상
배현철·김화곤·오세철·전봉곤 4명 등정 성공
바닥 난 체력·추락 위기 속, 상처 무성한 하산길
 
1캠프


조형규 대장은 정상 공격조를 발표했다. “배현철·이종광·박희택 대원이 1차 공격에 나서라. 2캠프에 있는 4명의 대원은 정상 공격조를 지원하기 위해 16일까지 4캠프에 도착해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마지막 정상 공격을 위한 4캠프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고도를 높일수록 바람은 거세져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졌다. 손은 얼어붙어 장비를 주마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섯 발자국을 옮겨놓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7400m까지 올라왔지만 평평한 설사면을 찾아볼 수 없었고, 추위와 허기는 그들을 극한으로 몰아세웠다. 먼저 도착한 박희택 대원과 셰르파는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박스 텐트 2동을 겨우 설치했다. 저녁 9시였다. 대원들은 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침낭 속으로 기다시피 침낭으로 들어가 곯아떨어졌다.

 
2_3캠프 구간을 오르는 대원들


1차 공격조 강한 눈보라에 무릎 꿇어

정상으로 가는 12월 17일 새벽. 텐트는 강한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앞날 워낙 체력을 소모한 대원들은 바람에 눈이 날리자 몸과 마음이 움츠려졌다. 도저히 나설 엄두가 나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렇게 2시간이 흘러갔다. 배현철·박희택·이종광 대원과 셰르파 2명은 서로 몸을 로프로 묶고 정상으로 향했다. 강한 눈보라가 몰아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눈과 가스로 인해 한 치 앞을 볼 수도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올라가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2시간 가까이 힘겹게 오르던 셰르파가 등반이 어렵다며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박희택 대원은 제안을 거절했다.

박희택 대원은 “강풍으로 온몸이 얼어붙었고, 화이트아웃으로 시야를 확보할 수가 없었다. 셰르파들이 되돌아가자고 했다. 고정 로프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4캠프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1차 공격조는 2시간 만에 후퇴했다.

베이스캠프에서 전 대원을 하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배현철 대원은 하산하지 않고 2캠프에 머물렀다. 배현철 대원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패배자의 모습을 보이기는 더욱 싫었다. 원정을 앞두고 힘든 상황들을 고려하면 허무하게 하산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미숫가루로 끼니를 때우며 3일간 버텼다.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잠만 잤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1988_1989년 눕체봉 정상 사진
2차 공격조 사투 끝 등정…뜨거운 눈물

12월 20일 전열을 재정비한 원정대는 4캠프에 배현철·전봉곤·오세철·김화곤 대원과 사다인 학파 노르부·파상 다와 셰르파 등이 도착해 고정 로프 한 동을 설치하고 다음 날 정상 공격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갔다. 12월 22일 새벽, 바람은 차가웠고 하늘은 별이 가득했다.

배현철 대원은 당시를 돌이키며 말했다. “그날 아침 날씨가 너무 좋았다.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하얀 산으로 가고픈 마음과 지난 4년간 준비한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정상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모든 것이 담담해졌다.”

대원들은 고정 로프가 끝나는 지점에서 오세철·김화곤 대원과 학파 노르부가 안자일렌을 하고 배현철과 전봉곤 대원·파상 다와가 함께 가기로 했다. 크레바스 지대를 통과할 때는 강풍에 날려가지 않기 위해서 기어가야 했다. 능선을 오를 때 한 발자국을 옮겨놓기도 힘들어 사이드 스텝으로 전진했다. 한 사람이 움직일 때 양쪽에서 확보해야 했다. 만약 한 명이 떨어지면 수천m를 추락할 수 있어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바람은 거세고 매서웠다. 세 켤레의 장갑도 소용없었다. 손가락은 끝마디부터 점점 감각을 잃어갔다. 피켈을 잡기도 힘들었다. 그들은 무의식 속에,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정상으로 이끌려갔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쉬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바로 위에 정상이 보였지만 지친 몸은 마음을 따라잡지 못했다. 12월 22일 오후 2시 5분 오세철·김화곤·배현철·전봉곤 대원이 정상에 올랐다. 강한 바람과 추위로 대원들은 촬영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정상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베이스캠프 여기는 정상!” 대원들은 베이스캠프에 소식을 알렸다. ‘와’하는 베이스캠프의 함성이 무전기를 통해 정상에 전달됐다. 대원들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몇 번의 무산 위기 속에서 어렵게 꾸려진 원정이었고 너무나 많은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흘린 눈물의 의미는 더욱 값진 것이었다.


멀고도 먼 고난의 하산길

사진을 급하게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은 더욱 강해졌고, 장작처럼 굳은 손으로 피켈을 사용할 수가 없어 바람에 몸이 흔들렸다. 거의 10시간 넘게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대원들은 추위와 허기로 인한 체력 저하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쳤다. 배현철 대원은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발이 꼬여 순간적으로 추락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억을 되새겼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는 순간 몸이 무언가에 걸린 것 같은 충격을 받았고 추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파상 다와가 피켈을 눈에 깊숙이 꽂아 확보했기 때문에 구사일생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둠이 밀려올 무렵 그들은 4캠프에 도착했다. 4캠프에는 23일 정상 공격조인 이종광·박희택 대원, 셰르파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악천후가 계속되면서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했다. 쉽지 않은 하산길이었다. 전봉곤 대원과 배현철 대원은 동상으로 하강기를 잡을 수가 없어 고정 로프를 팔에 감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이면 4캠프에서 베이스캠프까지 이틀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이제 겨우 3캠프에 도달했다. 밤이 찾아왔지만 2명의 대원은 심한 고통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대원들이 폭풍이 몰아치는 베이스캠프를 탈출하고 있다.
동상에 신음하는 대원들…지옥 힘겹게 탈출

특히 전봉곤 대원은 코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증세는 심각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날씨는 더욱 나빠졌다. 강풍으로 고정 로프는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바람은 로프에 매달린 대원들을 날려버릴 만큼 강력했다. 일부 대원들은 바람에 날려가지 않으려고 결국 배낭을 벗어 던졌다. 전봉곤 대원은 1캠프~베이스캠프 직벽 구간을 내려오면서 하강기를 사용하지 못해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말 그대로 죽음의 하산이었다. 그날 저녁 오후 8시쯤 대원들은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베이스캠프에 무사히 도착했다. 동상을 입은 대원들은 뜨거운 물에 찜질을 시도했지만 이미 얼어붙은 손을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밤부터 눈보라가 강한 바람을 타고 몰아치면서 텐트를 무너뜨렸다. 텐트 안으로 사정없이 눈이 몰아쳐 20㎝ 정도 쌓였다. 아침에 베이스캠프의 모든 텐트는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져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대원들은 망연자실했다. 더 버틸 베이스캠프도, 텐트도, 장비도 없었다. 12월 26일 원정대는 지옥의 빙하에서 탈출했다. 개인장비만 대충 챙기고 몸만 빠져나오는 고난의 탈출극이 시작된 것이다. 쿰부 빙하에 많은 눈이 내려 허리까지 쌓여서 후퇴도 쉽지 않았다. 정면에서 불어오는 거센 눈보라는 대원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일부 대원들은 송곳처럼 따가운 눈과 바람을 피하기 위해 뒷걸음으로 내려와야 했다. 경남연맹 눕체원정대는 북서봉을 겨울철 세계에서 처음으로 오른 영광을 안았지만 대원들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내놓아야 했다.

조형규 대장은 다짐했다. “이빨 빠진 톱날 모양의 눕체 북서봉은 세계적인 등반가들도 꺼릴 정도였다. 그해 겨울 쿰부 히말라야는 영하 40도의 혹한이었다. 4년간의 피땀 흘린 대가로 세계 초등이라는 하이드라마는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에서 가장 등반성이 뛰어난 등반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3명의 대원들은 손과 발을 동상으로 잘라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산하면서 맛본 폭풍설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끔찍하고 생생하다. 다시는 히말라야에 오지 않기로 작정했다.”

※ 그는 불과 2년 만에 히말라야를 다시 찾는다. 1992년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8125m) 원정대장으로 참가해 한국 초등을 이끌어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사진제공=원정대

 
 
눕체 원정대 사진과 장비 연시회를 알리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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