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민족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 이문 설농탕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민족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 이문 설농탕
  • 경남일보
  • 승인 2020.04.0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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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 설농탕 옛 모습

세계 각국에는 다양한 국물 요리들이 존재하지만, 한국인들만큼 국물 요리를 즐겨먹는 민족도 드물다. 매끼니 마다에는 국물 요리가 빠지지 않을 정도이고, 특별한 기념일에도 국물 요리가 빠지지 않는다. 예컨대, 생일날에는 미역국,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토란국, 결혼 잔치에는 갈비탕이나 잔치 국수를 먹는 전통도 있어왔다. 국물 요리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보니 그만큼 다양한 국물 요리가 존재한다. 한국의 국물 요리는 국, 탕, 찌개, 전골 등 크게 네 종류로 나뉘는데 조리하는 방법과 상에 내는 방식, 먹는 방식 등에 따라 구분된다. 먼저, 국은 국물이 주를 이루는 음식으로 국물과 건더기의 비율이 6:4 또는 7:3 정도로 구성된다. 다음으로 탕(湯)은 국보다 조리시간이 비교적 긴 편으로, 곰탕, 갈비탕, 설렁탕이 대표적이다. 찌개는 고기나 어패류, 각종 채소를 넣고 간장, 된장, 고추장, 새우젓 등으로 간을 맞춘 국물이 자작한 편인데, 국물과 건더기의 비율이 4:6 정도로 건더기를 주로 먹기 위한 음식으로 국보다 간간한 게 특징이다. 그리고 전골은 화로나 냄비에 고기, 내장, 푸른 채소 등 원재료를 넣고 미리 준비한 육수를 부은 다음 상에서 직접 익혀 먹는 음식이다.

특히 탕은 소의 뼈와 고기, 내장, 닭고기, 생선을 이용하여 푹 고아 우려 낸 진한 국물 요리로 곰탕, 갈비탕, 설렁탕, 내장탕, 삼계탕, 추어탕, 생선매운탕, 잉어탕 등이 있지만, 대표적이랄 수 있는 탕은 아마도 설렁탕일 것이다. 설렁탕은 귀천 없이 함께 나누어 먹던 대중음식으로 우리말 사전에 의하면 소의 내장, 뼈, 머리, 우족, 꼬리, 도가니 등을 푹 삶아 만든 국이다. 끓이면서 거품이 떠오르면 자주 걷어내고 누린내가 가시도록 생강, 파, 마늘 등을 넣는다. 이어서 살과 내장 따위를 끓는 국에 넣고 국물이 뽀얗게 될 때까지 설렁설렁 끓이다가 뼈는 건져내고 살과 내장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다시 넣는다. 고기가 손으로 뜯어질 정도까지 끓인 뒤에 뚝배기에 진국을 담아 밥과 말아먹는다.

국물이 뽀얗게 되도록 오랜 시간 설렁설렁 끓인다고 하여 ‘설렁탕’의 어원을 ‘설렁설렁’에서 찾기도 하고, 또 국물 색깔이 눈처럼 뽀얗고 국물이 아주 진하다고 하여 설렁탕의 어원을 한자 ‘설농(雪濃)’에서 찾기도 한다. 그렇지만 ‘설렁탕’의 어원은 ‘선농(先農)’에 있다고 보는 것이 통설처럼 되어 있다. 고려 이후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매년 경칩을 지난 초봄에 동대문 밖 동쪽 마을(지금의 제기동)에 선농단(先農壇)을 쌓아놓고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 준 ‘신농씨(神農氏)’를 기리고 한 해의 풍년을 비는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소와 돼지를 잡아서 통째로 상에 올려놓았는데 제사가 끝나면 소는 국을 끓이고 돼지는 삶아 먹었다고 한다. 이때 소를 잡아서 끓인 국을 ‘선농단’에서 먹은 국이라고 하여 ‘선농탕(先農湯)’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변하여 지금의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오직 설렁탕을 고수해온 토박이 음식점이 서울 종로에 위치한 이문설농탕(里門雪濃湯)이다. 창업연도는 정확하지 않은데, 대한제국 말엽인 1902년부터 1907년 사이 어느 해에 서울 종로에 개업한 대한민국 최장수 식당으로 공인되고 있다. 개업 당시 이름은 “이문옥(里門屋)”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문식당(里門食堂)”으로 바뀌고 다시 “이문설농탕(里門雪濃湯)”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른 설렁탕집과는 달리 인공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수하고 있어서 설렁탕 맛은 특이하게도 싱거우면서도 담백하다. 맛도 맛이거니와 오랜 전통으로 소문난 노포여서 유명한 단골손님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1936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손기정,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 남로당의 박헌영, 국문학자 이희승과 양주동, 그리고 전국노래자랑 최장수 MC 송해, 유도선수 하형주와 김재엽 등도 이 집을 자주 다녀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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