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15) 마산 악동, 에베레스트 등정(상)
신들의 정원 히말라야 (15) 마산 악동, 에베레스트 등정(상)
  • 경남일보
  • 승인 2020.04.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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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산사나이들, 산악사 새 장 열다

1989년 마산 악동원정대 에베레스트 남릉 등정
지방 단일팀·히말라야 첫 등반 세계 최고봉 올라
 
아이스폴을 오르고 있는 2명의 대원이 저 멀리 보인다
“한 많은 정상이었다. 피눈물 속에 올라선 정상이었다. 이곳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피 나는 고생을 했는가! 눈물을 참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봇물 터진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조광제 대원.

마산의 산 사나이들이 1989년 10월 13일 낮 12시 30분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마산산악동지회는 지방 단일팀으로 히말라야 경험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조광제 대원의 등정은 지방 산악사에 새 장을 여는 쾌거였다. 마산을 비롯한 경남에서 모인 산악인들은 1982년부터 에베레스트 원정을 계획했다. 김인태 대장은 마산산악동지회 창립 배경을 밝혔다.

“1982년 설악산 토왕성 폭포 좌·우 빙벽을 오르기 위해 훈련을 많이 했다. 그냥 산이 좋아 만난 선·후배였다. 토왕성 빙폭을 오르고 젊은 친구들이 군대 갔다. 1985~1986년 그들이 제대하고 산악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대원들은 훈련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다.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자연스럽게 산악회를 만들었고 원정으로 이어졌다.”

김인태 대장은 원정 당시를 회상했다. “1988년 여행 자유화가 시작되고 20~30대 젊은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하얀 산에 대한 동경과 원정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정말 어려웠던 시절 우리는 ‘에베레스트’라는 최대의 목표를 세우고 수년간 노력했다. 1억 원이 훨씬 넘는 원정 경비는 큰 부담이었다. 지방이라는 핸디캡을 대원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극복하고, 대원을 선발하고 동계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다. 때로는 열정이 불가능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방 최초 에베레스트 단일 원정대

원정대는 김인태(38·원정대장)을 비롯해 최재일(38·부대장)·이상곤(34·등반대장)·구자억(35·의료)·김병오(32·촬영)·조효제(30·장비)·조광제(28·회계)·박동열(32·포장)·김현진(27·수송)·천문철(27·장비)·김범택(27·수송)·김민효(26·촬영)·김석수(34·기록)·이근배(28·식량)·박희택(27·식량)·김일철(38·기록) 등 16명이 참여했다. 원정대는 1989년 7월 15일 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섰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행정업무를 마무리하고 8월 11일부터 카라반을 시작했다. 선발대는 7월 21일 먼저 출발해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본대는 보름이 넘는 카라반을 통해 고소적응을 마친 원정대는 8월 28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한국을 출발한 지 한 달이 넘어선 9월 3일 전 대원이 모였다. 다음날 본격적으로 루트 공략에 나선 대원들은 9월 4일 1캠프(6050m), 9월 7일 2캠프(6400m), 9월 12일 3캠프(7000m), 19일 4캠프(7400m)를 차례로 설치했다. 김인태 대장은 순조롭게 마지막 캠프를 건설하자 1차 정상 공격조로 조광제, 김범택 대원으로 결정했다. 9월 23일 자정께 공격조는 마지막 캠프를 떠났다.

조광제 대원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9월 22일 3캠프를 거쳐 오후 2시 4캠프에 도착했다. 드디어 정상으로 가는 날이다. 오늘 밤 10시에 공격을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에 부담감이 밀려온다. 셰르파들에게 산소통과 간식을 지급하고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산소 한 통을 김범택과 마시면서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옛날의 모든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우리를 도와준 많은 사람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옆에 있는 범택이에게 감추기 위해 침낭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이리저리 뒤척여 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더 맑아졌다.”

 
7400m에 설치한 4캠프
정상을 100m 앞에 두고

공격조는 자는 둥 마는 둥 저녁 9시에 일어나 베이스캠프와 교신하고 스프를 먹고 장비를 점검했다. 셰르파들이 시간을 지연시키는 바람에 저녁 11시 20분에 출발했다. 조광제 대원은 화가 났다. 그러나 정상 공격을 앞에 둔 중요한 상황에서 속만 태웠다. 텐트를 나섰지만 며칠 전 내린 눈이 많아 러셀이 무척 힘들었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천천히 전진해 나갔다. 사우스콜(8000m)에 도착할 즈음 티베트 하늘이 붉게 물들며 동이 트기 시작했다. 계획한 시간보다 훨씬 늦었다. 많은 눈이 내렸고 눈이 얼지 않은 결과였다. 두 개의 산소통은 점차 무거워졌고, 입으로 호흡을 하다 보니 목이 아파 간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조광제와 김범택은 산소 마스크에 얼어붙은 고드름을 제거하면서 눈웃음을 교환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오르고 또 올랐지만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조광제 대원은 남봉 밑 8700m 지점에서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가 넘었다. 셰르파들은 하산을 종용하면서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이 보였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가져온 산소도 부족했다. 체력도 바닥이 났다. 그는 베이스캠프에 하산하겠다고 보고하고 내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몸에 힘이 빠지고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수도 없이 넘어졌다. 사우스콜을 지나면서 산소도 모두 사용하는 바람에 완전히 탈진했다. 조광제는 회상했다. “그때 어떻게 4캠프까지 내려왔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살아 있다는 안도감에 大聲痛哭

두 대원은 몽롱한 상태에서 긴 밤을 보냈다. 그들은 침낭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몇 번이나 넘어질 정도로 체력은 고갈되고 말았다. 몇 번 시도 끝에 겨우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시고 멍청히 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둘은 서로를 껴안고 대성통곡했다. 실패의 아쉬움과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눈물이었다. 한편 베이스캠프에서는 두 대원이 연락이 없자 실종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완전히 탈진하면서 베이스캠프에 도착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연락이 두절되자 원정대는 수색작업에 나설 계획까지 세웠으며, 셰르파를 4캠프로 올려보내 상황을 파악했다. 다행히 배낭에서 무전을 꺼내 교신했다. 3캠프에서 조효제 대원과 박희택 대원이 그들을 2캠프로 부축해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정상을 100여 m 앞두고 산소가 떨어지면서 1차 공격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 악동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원명단.
10월 5일…2차 공격

1차 공격이 실패로 끝나자 대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9월 25일 밤부터 에베레스트에 많은 눈이 내렸다. 대원들은 말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조광제 대원과 김범택 대원은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원정대는 2차 공격조로 김범택·박희택·조광제·조효제 대원으로 구성했다. 10월 5일 정상 도전에 나섰다. 2캠프에서 김범택과 조효제 대원이 컨디션 저하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조광제·박희택 대원은 2~3캠프를 거쳐 10월 6일 4캠프에 도착했다. 텐트는 눈사태로 부서져 있었고, 그들은 오후 내내 텐트를 보수하고 2차 공격을 준비했다. 10월 8일 저녁 10시 2차 공격에 나서기로 했다. 그날 눈을 떴을 때는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깜짝 놀란 그들은 무전기를 켜고 베이스캠프와 교신했다. 늦은 교신으로 베이스캠프가 발칵 뒤집혔다. 10월 9일 새벽 음식도 먹지 않고 텐트를 나서는 순간 맹렬한 바람이 눈 폭풍을 몰고 왔다. 고정 로프를 움켜쥐고 피켈에 몸을 의지하며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시간이 지날 수록 전진은 힘들어졌고, 강한 바람에 티베트 쪽으로 날아갈 것 같은 불안감이 대원들의 머리를 스쳤다. 결국 등반을 포기했다. 원정대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원들은 “어떻게 해서 온 원정인데 포기할 수 있겠나. 다시 한번 전열을 정비해 마지막 도전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한국 악동 에베레스트 원정대



[취지문]꾼들의 모임….
응어리들이 한데 뭉쳐서 이제 크나큰 일을 벌러 놓았습니다.
“EVEREST!”
가슴 한구석 속에 자리잡고 있던 다정스러움이 사뭇 찡하게 울려와 우리의 의지를 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가르마타(SAGARMATA) 또는 초모롱마(CHOMOLUNGMA)라고도 불리우는 세계 제1의 고봉에 지방산악 단체에서 그것도 단일팀으로 대를 구성하려니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7년여를 훈련에 훈련을 해오면서 기다려 왔습니다.
이제 전 회원이 대원으로 구성되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자료를 수집하여 그동안 갈고 닦아왔던 기술과 체력을 십분 발휘하여 좋은 성과를 좋은 성과를 얻어 지방 산악문화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EVEREST가 한국대로서는 1977년에 처음으로 발을 올려 놓은 이후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잠을 자고 있던 한국대에 1987년과 1988년에 다시 허락한 성스러운 어머니의 산이 이제 마산의 악동대에 그 넓은 품을 벌리고 있습니다.
오직 HIMALAYA EVEREST의 진출에 대한 꿈으로 모든 열과 성을 다하여 훈련해 온 악동들에게 그 꿈이 실현되도록 힘써주신 본회의 자문위원장님 이하 전 자문위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고 격려를 주시는 산악 선배 동호인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모든 산악인들에게 언제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89.6 ‘89KOREA AK-DONG EVEREST EXPEDITION Leader
마산산악동지회장 김인태

한국인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1977~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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