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풍죽로당(荷風竹露堂)을 구함
하풍죽로당(荷風竹露堂)을 구함
  • 경남일보
  • 승인 2020.04.08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조문환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망 중에 하나는 다소곳한 곳에 그림 같은 집 한 채 짓고 사는 것이다. 가끔씩 여행을 하다가 눈에 드는 집이 보이면 한 참 머물며 감상하곤 한다. 이런 집들은 대부분 크지도, 그렇다고 빼어나게 좋은 집도 아니다. 햇빛이 잘 들고 언덕과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 드러나지 않지만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검소한 한옥이다. 기둥이나 서까래도 웅장하지도 않다. 집의 크기와 기둥이 잘 어울려 조화가 이뤄져 무게감이 없고 보기에도 부담이 없다.

주변과 집의 조화는 주인과 건축가의 안목에서 나오기도 한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독불장군처럼 주변경관을 해치는 경우도 가끔 볼 수 있다. 드물지만 하나의 건축물이 주변을 살려 놓아 ‘신의 한 수’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옛 선조들의 집짓기는 삶의 풍류와 편리성과 심미성까지 아우르는 종합예술적 시선을 가졌다. 연암은 임지에 있을 때 집을 짓고 당호를 붙여 집의 의미까지 더해 놓았다. 관아의 한 구석진 곳, 온갖 오물과 쓰레기가 난무하던 곳에 종복들을 시켜 다소곳한 당을 지었다. 연못을 만들고 이 연못과 연결되는 도랑을 내고 도랑에는 흰 자갈을 깔아 물의 소리 뿐 아니라 시각까지 볼품이 있도록 했다.

낮은 담장도 만들었다. 그 아래에는 홍도, 살구나무, 배나무를 심고 뒤뜰에는 대나무를 심어 울타리로 삼았다. 연못에는 연꽃을, 뜰 가운데는 파초와 인삼과 매화나무도 심었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이 작은 당에 앉아서 감상 할 수 있도록 했다. 연암이 이렇게 관아의 건물 한 채를 짓는데 심혈을 기울인 것은 관아에 머물 그의 후임자들을 위함이었다. 아침에 연꽃의 향내를 통해 바람 같은 은혜를 베풀고, 대나무 이슬을 통해 촉촉한 선정을 베풀라는 기대를 담은 것이다. 그래서 당을 하풍죽로당이라 이름 하였다. 이 모두가 갖춰져도 백성들과 더불어 즐기지 않는다면 연못과 정자를 세운 이의 뜻이 아님을 부언했다.

오늘날에도 이런 당 하나가 고을마다 있으면 좋겠다.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울 대형 프로젝트에 앞서 관리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과 철학을 가다듬는 작은 초당 말이다. 그래서 중앙당의 당명(黨命)이 아니라 세상의 원리가 담긴 당명(堂命)을 통해 물과 같이 흐르는 정치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