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그래도 투표는 하자
4·15 총선, 그래도 투표는 하자
  • 이웅재
  • 승인 2020.04.0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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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재기자

 

제21대 총선이 목전에 다가왔다. 코로나19 비상시국에 치르는 총선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초미의 관심사다. 복잡한 과정을 거친 이번 선거방식에 투표하는 국민 특히 고령 어르신들의 혼돈은 극에 달해 있다. 일부 어르신들은 투표 어떻게 하느냐부터 누굴 찍어야 하느냐까지. 심지어는 바뀐 당 이름과 후보가 연관되지 않는다며 그냥 이 사람 찍을테니 번호를 알려달라고도 한다.

식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신선한 피를 수혈해야 국회가 정화된다고 한다. 의욕과 실력을 갖춘 신진인사의 등극이 대한민국 미래를 바꿔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초선의 한계다. 국민이 보는 국회의원의 높이와 그들 무리속 초선의 위상에 큰 차이가 있다는 소리다. 그래도 초선 없는 다선 없고, 초선이라고 모두 다 힘 못 쓴다는 것은 아닐 터. 매의 눈으로 미래를 쏘아보고 지역을 위해, 또 국가를 위해 초지일관 나아간다면 다선 못지 않은 초선이란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여건이 이러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는 구조냐는 것이다. 후보를 속속들이 다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이다. 결국 선택은 나와의 연관성 즉, 혈연·학연·지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선거 무용론이 나오는 형국이다. 뽑아봐야 우리가 바라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텐데 무슨 소용있느냐는 지청구다.

정치인이 단견으로 세상을 농단하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마오쩌둥과 참새’는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다.

1958년 쓰촨성 농촌을 시찰하던 마오쩌둥이 곡식을 쪼아 먹는 참새를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라고 했다. 이후 박멸운동이 벌어졌고, 참새는 사라졌다. 결과는 풍년이 아니라 수천 명이 굶어 죽는 대흉년, 무너진 자연생태계 복원의 짐만 남긴 한심한 정책도 실세 한마디면 이뤄지는 것이 정치판이다.

코로나19로 우리국민의 출입을 막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대한민국 국격이 의심받고 있다. 세계교역국 10위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국제사회의 대접에 국민 자긍심이 망가졌다. 요즘,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을 떠 올린다. 이번 4.15 총선이 대한민국 반전의 역사를 수립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최선이든, 차악이든 투표하러 가자.

이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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