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16) 마산 악동, 에베레스트 등정(하)
신들의 정원(16) 마산 악동, 에베레스트 등정(하)
  • 경남일보
  • 승인 2020.04.12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0일간의 사투끝, 마침내 에베레스트 정상

8000m 고지 4캠프 등정조...바닥난 식량과 산소로 버텨
힐러리스텝 직벽 마주하고 일본.멕시코팀과 협력 돌파
한국 4번째, 지역 단일산악회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복
1989년 10월 13일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조광제 대원
마지막 도전…고향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김인태 대장은 10월 12일을 ‘D-day’로 잡고 조광제·박희택 대원을 정상 공격조로 결정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준비한 식량과 산소도 거의 떨어지고 있었다.

조광제 대원은 이렇게 회고했다. “산소가 부족해 2캠프에 있던 산소는 한 통뿐이었고, 식량도 거의 없었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무거운 짐들을 어떻게 지고 갈지 막막했다. 투덜거리면서 3차 공격 준비를 마치고 대원들의 전송을 받으며 2캠프를 출발했다.”

그들은 3캠프에서 자지 않고 곧바로 4캠프로 올라갔다. 그들은 고소 알파미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침낭 속에 몸을 맡겼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져 무기력했다. 침낭에서 나올 수도 없었다. 그들은 산소를 찾아 20분 정도 들여 마셨다. 머리는 맑아졌고, 힘이 생겼다. 8000m에서 낮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김인태 대장이 무전으로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오늘 저녁에 있을 정상 공격 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 시간에 출발하지 않으면 오후 늦게 정상에 도착하면 밤에 내려올 수밖에 없어 힘든 하산이 될 것이다. 장비도 철저히 챙겨라. 산소가 한 통밖에 없어 철저히 계산하고 움직여라.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겠지만 억지로라도 배불리 먹어라. 내려올 때를 대비해서 먹어두도록 해라.”

조광제 대원은 “이것이 마지막 공격인데 실패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등정을 하던 실패를 하던 빨리 끝내고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회고했다.

홀로 정상을 향한 발걸음

10월 12일 저녁 10시 30분 마지막 3차 공격조로 조광제, 박희택 대원이 캠프를 출발했다. 세찬 바람이 얼굴에 싸늘함을 전달했지만 밝은 달은 그들이 나아갈 길을 비추고 있었다. 추운 날씨로 눈이 잘 얼어 오르기가 쉬웠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새벽 2시 그들은 사우스콜(8000m)에 도착했다. 조광제 대원은 한참을 오르다 뒤를 돌아봤다. 뒤따라오던 박희택 대원이 보이지 않았다. 조광제 대원은 셰르파도 없이 이제 혼자 등반해야 했다. 그의 뒤를 일본팀이 따르고 있었다. 조광제 대원은 일본팀을 앞지르면 시즌 초등이었기 때문에 힘을 내며 올라갔다. 그는 피켈로 확보하고 박희택 대원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고 일본팀은 점점 다가왔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 박희택 대원이 잠시 보였지만 전진하지 못했다. 조광제 대원은 3시간 정도를 기다리다 혼자 공격에 나서기로 했다. 남봉을 20m 정도 남겨두고 일본팀과 만났다. 이제 남은 것은 남봉과 에베레스트 정상을 연결하는 능선을 어떻게 돌파하느냐 문제였다.

조광제 대원은 당시를 회고했다. “카를로스 카르솔리오가 이끄는 멕시코팀과 일본 대원들이 힐러리 스텝 밑에 도착했지만 서로 앞장서기를 꺼렸다. 힐러리 스텝은 깎아지른 얼음 직벽으로 형성되어 있다. 일본 대원이 나를 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했지만 한마디로 거절했다. 거센 바람에 날아가면 어떡할까 싶어서였다. 결국 3팀이 협력해 힐러리 스텝을 돌파했고 정상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정상을 향하여 힘겹게 오르고 있는 대원들
화창한 날씨 속에 등반하던 대원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원정 60일째…에베레스트 정상(8850m)

그는 조심스럽게 정상을 향했다. 14시간의 사투 끝에 10월 13일 낮 12시 30분 정상에 올랐다. 그에게 정상은 남달랐다.

“한 많은 정상이었다. 피눈물 속에 올라선 정상이었다. 그동안 원정을 오기 위해 노력한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한국에서 4번째 등정자로 특히 셰르파 도움 없이 지역 단일 산악회에서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산악인이었다. 그러나 등정의 기쁨을 베이스캠프에 알릴 방법이 없었다. 무전기를 박희택 대원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품속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방을 촬영했다. 일본팀에 부탁해서 등정 사진을 찍었다. 일본팀에게 등정 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남봉에 도착한 그는 1차 공격 때 남겨둔 산소통으로 교체했다. 해가 지면서 추위가 엄습했다. 피켈 하나로 의지하며 미끄러지고 넘어지기를 수 없이 반복하며 4캠프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박희택 대원이 산 송장처럼 누워 있었다. 탈진한 두 대원은 서로 돌봐줄 어떤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저녁도 먹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어렵게 3캠프로 내려갔고,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베이스캠프로 무사히 하산했다. 1989년 7월 15일 한국을 떠난 원정대는 10월 25일 100일간의 사투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귀국했다.

한편 산악동지회는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해 2019년 10월 아마다블람을 등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명환 경남산악연맹 부회장·경남과학교육원 홍보팀장

◇조광제의 뒷이야기

 
1989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장 김인태 대장(오른쪽)과 등정한 조광제 대원(가운데), 그리고 필자.
“1차에서 실패하고, 날씨 관계로 2차에서도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계속 등정에 실패하다 보니 많이 위축됐다. 마지막으로 10월 13일 공격을 할 당시에는 정말 천운(天運)을 만났다. 그때의 심정은 여기가 마지막이라고 할 정도로 절박했다. 희택이하고 나하고 출발했다. 한참 등반하다 희택이가 지쳐 뒤처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올라갔다. 남봉에서 멕시코의 카를로스(1985~1996년:세계 4번째 8000m 14좌 완등자)와 함께 정상으로 향했다. 정말 힘들었다. 내 몸에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정상에 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섰을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전달될지 모르겠다.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생각했다. 내가 정말 정상에 올랐는가? 안올랐는가? 의문이 들었다. 한참 뒤에 일본팀이 왔다. 정상에서 모두 모여 기쁨을 누렸다. 그때 실감이 났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감정이 상당히 복바친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해외 원정을 처음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큰 산을 등반했다. 정말 훈련과 등반, 정상 등정은 지옥과 천당을 오간 느낌이었다. 내려오면서 희택이 걱정을 많이 했다….”

30년이 지난 감회를 돌이켜본다면?

“30년 전을 돌이켜보면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는가 싶다.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산을 더 알고 해외 원정을 계속 다녔다. 그리고 깨달았다.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등반을 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산꾼들은 산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많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등반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왜 히말라야를 가는지 이해를 잘못하고 있다. 히말라야 등반이 삶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삶을 살아가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우리가 하나의 역경을 만났을 때 이겨내는 방법을 알고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정면으로 받아들여 해결하고 위안을 얻는다. 특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올랐다는 자부심을 갖고, 그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게 어디 있겠나 생각한다. 사업을 하면서도 그것도 했는데 이것을 못하겠나 하는 용기를 얻고 자긍심과 자부심을 많이 느낀다. 산에 다닌 사람으로서, 산을 매개체로 현재 하고 있는 사업에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사람으로서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