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매탈을 닮았다
그는 이매탈을 닮았다
  • 김성진 (시인, 수필가, 진주문협 사무간사)
  • 승인 2020.04.13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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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시인, 수필가, 진주문협 사무간사)
김성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톡’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에 귀가 반응했지만, 눈은 뜨이지 않았다. 잠시 기다렸지만 달아난 꾸벅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졸음을 쫓으려 의자를 고쳐 앉는데 느낌이 싸했다. 고개를 들다가 깜짝 놀랐다. 한 남자가 출입문 안쪽에 조용히 서 있다. 목발을 짚고 있는 그는 낡은 양복을 단정히 입고 있다. “가족도 없는 장애인인데요. 배가 고파 그러니 이천 원만 꾸어주세요”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 꾸어달란다.

그 모습이 이매탈을 닮았다. 눈꺼풀에 숨은 눈이 그랬다. 소매 끝은 땟국물이 말라붙어 윤기가 났다. 턱이 유난히 작아 마치 이매탈 같았다. 하회탈 중에 양반이나 선비, 백정 등 남성 탈은 턱 부분이 분리되어 움직인다. 얼굴을 위로 들면 입이 벌어져 웃는 모습이 되고, 아래로 숙이면 입이 다물어져 무뚝뚝한 표정이 된다. 하회탈 중 이매탈은 턱이 아예 없는 탈이다.

올 때마다 복장과 레퍼토리가 똑같다. 한 달째 세 번이나 찾아온 것을 기억도 못 하는 눈치다. 아니 허탕 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또 찾아왔는지 모른다. 폐업을 고려할 때라 이번엔 화를 버럭 냈다. 내심 또 돈을 얻을 거라 기대했는데 느닷없이 화를 내니 평소 보이지도 않던 눈을 크게 뜨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구걸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물건을 내놓고 구매를 요구하는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물건을 파는 것은 구걸이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굳이 그런 사람들까지 구걸로 간주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그들을 통해 구매한 물건들이 제값을 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 어려운 그들의 사정을 듣고 사주었는데, 품질이 그야말로 일회용보다 못했다. 면도기는 수염을 뜯다시피 했고, 벨트는 사흘도 못써 늘어졌다. 칼은 한번 썰고 톱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일이천 원을 그냥 주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유튜브의 크리에이터가 온갖 퍼포먼스로 구독이나 별풍선을 구걸하는 것을 본다. 삶에서 욕구나 욕망은 모두 구걸이다. 사랑을 바라는 것도 희망을 품는 것도 마찬가지다. 구걸은 살아가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처럼 따라다닌다. 장애인이라며 이천 원만 달라는 말, 얼마나 솔직한가. 힘도 없고 몸도 아프니 능력 있는 분이 조금만 도와주면 좋겠다는 말이다. 꼭 강요하는 말이 아니다. 위선의 정치인이 국민에게 민심을 구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솔직하지 않은가. 껍데기만 두른 나에게 없다고 고백했다. 언제든지 자리가 바뀔 수 있으니 거만하지 말라는 고백이다.

김성진/시인, 수필가, 진주문협 사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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