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가 말고기여서야
쇠고기가 말고기여서야
  •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 승인 2020.04.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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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쇠고기는 쇠고기여야 하고, 말고기는 말고기여야 한다. 쇠고기가 말고기여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세상이 뒤집히고 있다고 해도, 쇠고기를 말고기라고 뻑뻑 우길 수야 없지 않은가? 얼마 전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꽃잎들이 난분분하더니 이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는 감흥도 감회도 가질 겨를이 없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다.

벚꽃을 가리켜 잘 알려져 있듯이 일본어로 ‘사쿠라’라고 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온천지가 사쿠라 천지다. 이 똑같은 말의 표현이라고 해도 전혀 다른 말로 들리는 게 한국인들의 언어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사쿠라 하면, 낮에는 야당 투사로 자처하면서 밤에는 여당에 붙어 야합하는 엉터리없는 정치인을 연상하기가 일쑤다.

일본인들은 에도시대에 막부의 최고 권력자인 한 쇼군(장군)이 온 백성들에게 육식금지령을 내렸다. 한 승려로부터 자신의 전생담을 전해 듣고 결단한 가소로운 정책이었다. 이 이후 오랫동안 일본인들은 육식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이 이전에는 육식이 가능했다. 일본 역시 최고의 육식은 우리나라처럼 쇠고기였다. 그러나 농사일에 큰 도움을 주는 소를 함부로 먹지 못했다. 쇠고기를 대신한 대용 식품이 말고기였다. 말고기를 말고기라고 하면서 팔면 문제가 없는데, 이것을 쇠고기라고 속여서 팔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던 거다. 가짜 쇠고기인 말고기를 가리켜 사쿠라라고 한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갈등을 빚는 것은 대체로 보아서 쇠고기를 쇠고기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말고기를 말고기라고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쇠고기를 가리켜 말고기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말고기를 두고 쇠고기라고 한다. 심지어는 쇠고기와 말고기를 뒤섞어 놓고 이 모두가 쇠고기라고 뻑뻑 우기기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계에서는 코로나를 코로나라고, 바이러스를 바이러스라고 말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코로나를 코로나로 풀어야 하는데 코로나를 정치로 풀려고 하고, 바이러스를 바이러스로 난국을 해결해야 하는데 불구하고 바이러스를 하나의 선거용으로 이용하려고 든다. 지금의 어려움은 코로나를 코로나라고, 바이러스를 바이러스라고 대처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칼 포퍼라고 하는 사상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상대주의를 인간의 뿌리 깊은 질병을 반영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도덕적 상대주의는 어떤 시대에서나 어떤 상황이라도 가능한 옳고 그름에 대한 구별을 짓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송나라 시대의 선승인 청원유신(靑源有信)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공부하지 않았을 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르러 참선에 대한 지식과 가르침을 받아 보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을 깨우쳐 얻은 오늘에 이르러서야 다시 그 예전의 산과 물을 보니, 마침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더라. 가치의 무정부 상태에 빠진 어둡고 엄혹한 전두환 시대에, 산은 산, 물은 물…성철 스님이 인용해 우리에게 유명해졌다.

쇠고기를 쇠고기라고 하고 코로나를 코로나로 말하기까지 자기 긍정의 용기가 필요하다. 사물에의 부정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기 성찰의 단계를 거쳐야 이 용기의 새로운 단계에 이른다. 이 세 번째 단계, 이 완성 단계를 두고 에리히 프롬은 ‘새로운 현실주의의 여명’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한, 가장 어두운 단계에 처해 있는지 모른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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