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아일랜드는 정말 안전해요. 이제는 정말 마음껏 다니세요.
파푸아뉴기니에서 사귄 젊은 친구들, 경찰 사령관이 배웅을 나왔다. 파푸아뉴기니에 와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다니는 모습에 학을 떼었던 경찰 사령관 미스터 캄보가 말했다.
솔로몬제도에 도착해 공항에서 환전 하고나니 택시기사들이 흥정을 걸어온다 생각보다 너무 비싼 금액에 놀라 어떻게 할 지 궁리하는데 비행기에서 만난 스위스 커플이 보였다. 택시를 잡아 짐을 싣는 와중이었고 가서 말을 걸었다.
“혹시 시내 나가는 길이면 같이 타고 택시비를 같이 내면 어떻겠어요?”
조금 고민하더니 알겠다고 한다. 같이 택시를 타고 가며 인사도 나누고 77콘서트 영상도 보여주며 친해졌다. 오지탐험가 라는 말을 듣고 필리핀 팔라우의 외딴섬 블리보스 섬을 추천해준다. 자신들은 결혼은 안했지만 15년째 연애중이고 1년 동안 여행 중이라고 한다. 프로다이버인 그들은 여행 중에 기회가 닿으면 다이빙 클래스를 운영해 여행경비를 충당한다고 한다. 먼 여행루트를 숙소와 항공권을 다 결재해두었다고 하는 그들은 행복해보였다. 여행은 이렇게 전혀 새로운 루트의 방법도 마련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된다. 솔로몬제도는 교통체증이 최악이었다. 15㎞ 거리를 2시간이나 운전해야 겨우 도착했다. 솔로몬제도 최고급 리조트에 머무는 그들의 종착지까지 함께 와서 정보도 받았다. 카운터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를 리조트 투숙객으로 착각한 직원이 웰컴 드링크로 코코넛을 주었다. 시작이 좋았다. 더불어 안전하기까지 하다니 산중턱에 숙소까지 갈 길이 멀지만 걷는 데는 자신 있던 터라 걱정이 없다. 시간을 아끼는 배낭여행자이기에 서둘러 길을 나서려는데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그들의 솔깃한 제안이 왔다.
“아저씨, 오늘 택시 타고 오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같이 드시겠어요?”
최고급 리조트 식당에서 최고의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이지만 저녁식사시간까지는 4시간이 남았고 그때는 얼마나 멀리 가있을지 몰라 섣불리 약속할 수 없어 거절했고 관광센터를 찾아갔다. 가이드를 동반한 오지마을 방문코스가 있었고 숙소에 픽업하러 온다는 말에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숙소는 솔로몬 시내 시장가를 지나 주택가도 지나서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30분은 걸어 가야하는 곳이었다. 시내를 지나가는데 어떤 건장한 청년이 다가와 어떤 그림을 내민다.
‘뭐지?’하고 보는데 주머니로 손이 들어오는 것이다 재빨리 손을 막아서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냥 흘깃 보고 갈뿐 중재하는 사람하나 없다. 숨 막히는 대치가 5초가량 이어졌고 다행히 그냥 인파속으로 사라졌지만 끝까지 적개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사라졌다. 여행자에게는 언제나 붙는 눈이 있는데. 오늘은 유난히 위험하다. 여행자에게는 안전한 국가가 있다기보다는. 어디서든 하기 나름 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시내를 지나고 보이는 주택가가 마치 할렘가 처럼 빈약해 보이는 게 아닌가? 혹시 지켜보고있거나 따라오고 있을지 모르는 그들에게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 일단 현지에 내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보이는 아무집이나 가서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묻기도 전에 일단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눈을 마주쳐주는 솔로몬 사람. 서글서글하고 푸근한 런닝 차림의 아저씨가 나왔다.
“아 그렇군요. 일단 들어오세요.”
반갑게 웃으며 인사하는 내게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집안으로 안내한다. 이것으로 소매치기 일당의 시선은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을 터였다. 주황색 열대과일 포포를 대접받고 나오자 길에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나는 오지탐험을 통해 직관적 통찰과 의식이 추상적사고와 논리적분석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숙소를 향해 올라가는데 지금부터 등산이다. 오르막길을 지나 산중턱에 아파트를 찾아야하는 것이다. 산중턱에 들어서고 지도상에 주소지와 근접해있는데 아파트는 보이지 않았고 때 아닌 장대비가 쏟아졌다. 급하게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데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강풍을 동반한 강한 빗줄기는 피할 수가 없었다. 나무 밑도 조금씩 젖어간다. 같이 가방과함께 옷도 젖어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Ya~~~~~~~”라고 소리를 지르며 숲속에서 8살 남짓한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철퍽철퍽 뛰어다니는 그들을 보며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카메라를 들어 아이들을 찍자 더 신나게 소리치며 뛰어다닌다. 아이들의 몸이 장대비에 씻기듯 소매치기로 놀란 마음이 함께 씻겨져 내려간다. 어느새 내 몸은 흠뻑 젖어있었고 숙소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나가는 차에 부탁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타라며 문을 열어주고 함께 숙소를 찾아주었다. 아무리 다녀도 보이지 않았고 인근 주민을 거의 전부를 만나고서야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도미토리 숙소의 이름은 아파트였지만 작은 주택형 숙소였기에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숙소에 들어오고 나니 이미 어둑어둑해진 뒤라 가이드는 할 수 없었고 옷을 갈아입고나와. 숙소주인에게 찾기 힘들었다는 말과 함께 가이드를 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 속이 상한다고 이야기하자. 남편이 나와서 저녁투어를 시켜주었다. 산골짜기 길거리 좌판에서 싼값에 과일도 사고 첫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라이브 콘서트와 전통춤공연이 있을 거라는 말에 찾아가보았고 콘서트는 언어만 다를 뿐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전통춤공연은 최고급호텔이자 스위스 커플에 숙소에서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커플과 마주쳤고 함께 관람했다. 솔로몬제도의 전통춤은 뉴질랜드의 하카를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적들에게 위협을 주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노를 젓고 씨를 뿌리는 등 일상생활에서 하는 노동의 의미가 많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첫날밤이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