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교황과 남북정상의 대화법
두 교황과 남북정상의 대화법
  •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 승인 2020.04.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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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지난달에 영화 ‘두 교황’을 보면서 1년 전의 남북정상들이 떠올랐다. 교황은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분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미·일·중·소가 시어머니, 시누이 노릇을 하고 있어서 단순 비교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정치인과 종교인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같은 점도 있다. 남북정상은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이다. 교황과 추기경 역시 교회에서 매주 미사를 드리는 같은 가톨릭 신부이다. 그리고 남북정상은 각자 정반대의 이념에 기반을 둔 남쪽, 북쪽을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이고, 교황과 추기경 역시 가톨릭 내의 보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교회 지도자이다. 영화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교황과 추기경이 서로 싸우다가 달래고, 밀어내다가 당기는 모습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많은 분들이 영화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북정상은 멋진 도보다리 만남으로 평화로 가는 길목에는 들어섰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전·현직 ‘두 교황’이 만나서 마음을 열고 나눈 솔직한 대화가 부럽다. 베네딕토 교황은 독일 출신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윤리신학자이다. 그는 나치 소년단 경력으로 비판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해방신학자다. 두 사람은 똑같이 교회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그 방법은 정반대였다. 주장만 하느라고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만 같은 극과 극의 만남이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속마음을 서로에게 내보이다가도 양보할 수 없는 각자의 신념이 불쑥불쑥 뜨겁게 부딪쳤다. 다음 장면에서는 상대방을 심하게 비난할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중간에 떠날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중을 보여주는 두 분의 아름다운 만남은 특정 종교를 넘어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지난해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서 악수를 나누었다. 1953년 종전 이후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땅을 처음 밟은 날이다. 판문점은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역사적 현장이다. 바로 그곳에서 12시간 동안 함께 있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군사분계선 넘나들기, 도보다리 대화, 판문점 선언은 그야말로 파격 행보였다. 판문점 선언문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엄숙히 천명한다’로 시작하였다. 1년 전에 있었던 일촉즉발의 전쟁 공포를 생각하면 기적이었다.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인 문정인은 “선언문에 담긴 새로운 시대는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 초현실적 서사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그날 우리들은 TV를 보면서 연출과 즉흥이 어우러진 한 편의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남북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다음 휴전선 양쪽에 설치되어 있던 확성기를 서로 철거했다. 그동안 상대방에 대한 험담을 많이 했으니 이제부터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런 행동이 설사 정치적인 쇼라고 해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굉장히 반가운 일이면서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대결시대에 익숙하다. 공존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아무래도 낯설게 느껴진다. 상대방을 욕하는 건 자연스러운데 칭찬할 줄을 모른다. 덕담하면 어떤 분들은 6·25전쟁을 몰라서 그러는데 속임수에 넘어간다는 말을 할 것 같다. 그러나 공존시대를 살려면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칭찬하는 일을 해야 한다. ‘두 교황’은 벽을 쌓는 대신 다리를 놓을려고 했고, 편을 가르는 대신 하나가 되고자 했다. 끝까지 경청과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대화에서 ‘우리의 대화법’을 돌아보게 된다.
 
전점석 (경남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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