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장만호
개심사 배롱나무
뒤틀린 가지들
구절양장의 길을 허공에 내고 있다
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변심과
작심 사이에서
마음은 얼마나 무른가
무른 마음이 파고들기에 허공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
새가 앉았다
날아간 방향
나무를 문지르고 간 바람이,
붐비는 허공이
배롱나무의 행로를 고쳐놓을 때
마음은 무르고 물러서
그때마다 꽃은 핀다 문득문득
핀 꽃이 백일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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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험난한 길을 걷는 건 꽃이나 사람이나 같은 것. 무르고 선하다 여긴 것들이 나를 치고 가기도 하고 그런 나를 나는 자학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내 마음은 물러서 문득문득 꽃이 피고 그 꽃이 길을 내고. 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먹은 마음과 먹었던 마음이 제 방향에서 길을 틀기도 하고. 원치 않은 길에 서 있으면서 내가 당도할 장소에 나는 언제쯤 온전히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인데. 그러면서 오늘은 어느 단단한 허공에 길을 내볼까 마음을 얹어볼까를 고민하는 것인데. 개심사에 핀 배롱나무 꽃이 백일을 가는 동안 어떤 이는 꽃잎 떨어진 연못의 일렁임에 단단한 마음을 담그고 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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