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5]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05]
  • 경남일보
  • 승인 2020.04.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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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굴산 천불천탑과 허굴산방

 

◇천불천탑에 서린 민중의 소원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전국민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떼 지어 봄을 즐길 수 있는 형편이 못되다 보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단체활동보다는 가족이나 지인끼리 단출하게 상춘(賞春)을 떠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코로나19가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어 놓았다. 필자도 지인과 함께 절정에 이른 봄을 만나기 위해 합천 허굴산에 있는 허굴산방과 천불천탑을 찾아 나섰다. 국도변에는 끝물인 복사꽃과 배꽃이 분홍빛과 흰색 손짓을 번갈아 보내는 탓에 상춘객의 마음을 한껏 설레게 했다.

진주에서 한 시간여를 달려 허굴산 기슭에 있는 천불천탑에 도착했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와 함께 소원 성취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가족이나 지인끼리 소규모로 다니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도로에서 300m 정도 올라가자 천불천탑의 입구가 나타났다. 수많은 돌탑이 길 양켠에 서서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었다. 돌탑길을 따라 올라가니 자그마한 연못 가운데 반석 하나가 물에 잠길 듯 말 듯 놓여 있었다. 소원을 담은 동전을 던져 반석 위에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원연못이다. 연못에 비친 오불탑 그림자가 동전을 던지는 탐방객들에게 묵언으로 응답을 건네는 듯했다.

 

소원연못을 지나자, 소원을 적어 기원하는 곳이 있었다. 건강, 시험, 승진, 득남이나 득녀 등 소원마다 각각 다른 색상의 리본을 구비해 놓고 그 소원을 리본에다 적어서 소원성취 길에 쳐놓은 줄에 매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청춘남녀들을 위한 리본도 마련해 놓았는데, 남자는 빨강, 여자는 분홍 색 리본에다 사랑의 소원을 적어 매달아 놓으면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소원성취의 길에 걸쳐놓은 줄에 매단 색색의 수많은 리본이 하나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소원성취 길을 지나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나타났다. 소원성취 용바위다. 삼배를 올린 뒤, 용바위를 끌어안으면 그 기운을 받아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용바위 옆으로 자연마애불로 가는 좁은 돌계단이 있었다. 자연마애불 앞에 참배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이곳이 천불천탑의 야외법당인 셈이다. 관세음보살께서 현신하셨다고 하는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을 줄 알았는데 부처님은 계시지 않고 큰 바위뿐이었다. 삼배를 드린 뒤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자연석에 요철된 모양이 마치 부처님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렇다. 즉심시불(卽心是佛), 사람의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한 마조선사의 말씀처럼 부처는 눈에 보이는 피사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우매한 필자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따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오는 길, 부처체험돌탑을 만났다. 비어 있는 돌탑 속에 들어가 부처님처럼 앉아서 스스로 부처가 되어 보는 부처체험돌탑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불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함과 더불어 잠깐이나마 부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보게 하는 소중한 체험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탐방객들은 그냥 돌탑 속에 들어가 기념사진 하나 찍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소원연못, 소원길, 소원용바위, 소원마애불 등 일방적으로 소원을 비는 곳처럼 보여 다소 아쉬웠지만, 마지막에 탐방객 스스로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부처체험이 필자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치유와 창조의 공간인 허굴산방
천불천탑을 답사한 뒤 가회면 산두마을 허굴산방을 찾았다. 허굴산, 특이한 산이름의 유래가 무척 궁금했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바라보면 산중턱 굴 안에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것 같아 바랑을 벗어놓고 올라가 보면 부처님은 없고 허굴만 있다하여 ‘허굴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허굴산 기슭 500m 고지에 자리잡은 허굴산방에 닿자 김태완 원장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황토방 한옥집의 차실에서 함께 차담을 나누었다. ‘우리차와 민간치유연구소’를 겸한 허굴산방에서 만든 차는 그 맛과 향이 독특했다. 찻잎을 따서 시들게 한 다음 손으로 빚어서 말리기를 9회 반복하여 21일 동안 말려 만든 차가 ‘황매산 다독다독 발효차’라고 설명하는 김 원장의 표정에서 자긍심과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황매산 다독다독 발효차는 많이 마셔도 부작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몸속에 축적된 독소와 노폐물을 빼주는 역할도 해 준다고 했다.

차와 함께 작은 종지에 담아놓은 황토소금을 먹어보니, 짠맛이 적고 살짝 단맛이 비쳤다. 국산 천일염을 1시간 정도 볶아 간수 및 불순물을 제거한 뒤 황토항아리에 담아 800도나 되는 장작 가마에서 12시간 이상 다시 구우면 순백의 소금꽃이 핀다고 한다. 유해 성분을 제거하여 미네랄이 풍부한 이 황토소금이 바로 ‘황토에 핀 소금꽃’이다. 이뿐만 아니라 구증구포한 녹차황토소금, 연잎차 황토소금, 뽕잎차 황토소금의 제조 과정과 그 우수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한옥민박과 우리차 만들기, 솟대 만들기, 연잎밥 짓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과 함께 마음 치유를 위한 힐링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허굴산방이다. 그리고 1년에 네 차례 계절마다 테마가 있는 ‘다회 겸 음악회’를 가진다고 한다. 합천지역뿐만 아니라 진주와 창원, 부산, 대구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낭만을 즐기고 간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김 원장의 어깨엔 신명이 나 있었다.

 

차담을 마치고 황토방을 나서자 꽃비처럼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뜨락 한켠에 있는 텃밭에는 상추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채소들과 차밭의 녹차들이 비를 맞으며 생기를 되찾고 있었고, 차밭 아래 조팝나무 하얀 꽃들이 울타리로 둘러 선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봄의 운치를 더욱 돋우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확 트인 풍경이 갑갑한 도시에서 살아온 필자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것 같았다. 때마침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 들려주는 청아한 소리가 비에 젖은 허굴산방의 정취를 한껏 더해 주었다. 뜨락 한가운데엔 연자방아로 만든 돌식탁과 돌의자가 놓여 있었다. 지인들이 찾아오면 이곳에서 연잎잔에다 막걸리를 부어 입으로는 막걸리를 마시고, 눈으로는 펼쳐진 풍경을 마시며 낭만을 즐긴다고 한다.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을 눈과 귀로 담아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했다. 내리는 봄비가 코로나19를 말끔히 헹궈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망울진 봄을 활짝 피웠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박종현 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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