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칼국수
추억의 칼국수
  • 경남일보
  • 승인 2020.04.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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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진주문협 사무간사)
김성진

 

나의 혀는 감각이 순하다. 맛에 대한 눈높이도 낮아 쉽게 만족한다. 미식가라 자칭하지만, 잡식가에 가깝다. 행복은 자기만족이라는 나만의 변명으로 맛을 즐긴다. 즐기는 맛이라 해봐야 겨우 면(麵)이다. 보잘 것 없는 면이라지만, 실속 없이 바쁜 서민의 한 끼 해결에 이만한 것이 없다. 하루 한 끼는 거의 면이니 사랑이 깊어도 지나치다. 수많은 면 중에 별스레 칼국수를 좋아한다.

굶지 않는 것이 행복이던 시절이었다. 조실부모한 아버지가 밥숟가락 하나 덜어보고자 막내 고모를 시집보냈을 때 고모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다. 정 많은 고모는 시집간 첫날 밤 울며불며 돌아왔다. 머슴처럼 살 테니, 시집보내지 말라고 아버지를 잡고 매달렸다. 그로부터 십 년은 부엌과 텃밭은 늘 고모의 자리였다. 등에는 늘 어린 조카들이 업혀 있었다. 우리들에겐 장돌뱅이 엄마를 대신한 실제의 엄마였다. 고모는 에디슨보다 훌륭한 발명가였고, 안데르센보다 훌륭한 작가였고, 중국집 주방장보다 훌륭한 요리사였다. 특히 음식은 아무리 하찮은 재료라도 고모의 손을 거치면 최고의 맛으로 변했다. 그중 최고의 맛은 단연코 칼국수였다.

칼국수는 대개 국물 맛을 내는 재료에 따라 이름도 달라진다. 지역에 따라 바지락, 멸치, 닭고기 등의 재료로 국물 맛을 낸다. 고모의 칼국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소박했지만 특별했다. 산비탈 텃밭에서 재배한 메밀이 주재료였다.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반죽을 만든 후 안반 위에 올려 홍두깨로 밀었다. 얇게 펴진 반죽을 돌돌 말아 가늘게 썰어 면발을 만들었다. 고명이라 해봐야 텃밭에서 나온 감자와 호박이 전부였다. 다시물도 멸치는 언감생심, 양파와 간장만으로 우렸다. 가난한 살림에 텃밭의 재료만으로 요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고모는 그렇게 우리들과 십여 년을 함께 살다 가셨다. 엄마 같은 고모가 우리 곁을 떠난 뒤로는 한 번도 사랑과 정성이 담긴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투박한 아버지의 손맛이나 서툰 여동생의 손맛이 전부였다. 지난 것은 다 그리워진다고 했던가. 가끔은 칼로 쓴 고모의 칼국수가 먹고 싶어진다. 칼국수 잘한다는 곳 많이 다녀보았지만, 화려한 고명이 눈을 즐겁게 할 뿐, 추억을 채워주는 그 맛은 찾을 수가 없다.

음식을 눈으로 맛보고 혀로 맛본다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찌 화려함과 양념이 맛의 전부란 말인가. 아무리 산해진미 진수성찬이라 해도 그리움이 담긴 추억의 맛을 능가할 순 없다. 추억의 맛은 혀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그 맛은 아련하고 애틋하다.

김성진 (진주문협 사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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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2020-04-21 17:39:15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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