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4]루브르 박물관 2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4]루브르 박물관 2
  • 경남일보
  • 승인 2020.04.2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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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에술의 결합이 만든 조작된 사실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박물관에 방문했으니 각오야 했겠지만 전시실 안내지도를 손에 쥐고 있다 하더라도 어디서부터 어떤 그림을 보면 좋을지 막막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아무런 계획 없이 오직 모나리자를 보기위해 루브르에 왔다면 그 여인을 마주하는 관람미션을 성공한 후에는 어디로 발걸음을 돌리면 좋을지 고민에 빠지게 마련이다.

혹시라도 안내서나 가이드 책자를 읽어 보지 못하고 박물관에 방문했거나, 아주 짧은 관람 시간밖에 없을 때는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하기 전에 박물관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서점을 먼저 가볍게 둘러보자. 그곳에 가면 내가 방문한 이 박물관이 가장 자랑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인기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주요 작품들을 모아놓은 도록 등은 관람 계획을 더욱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만들어 준다.

이탈리아 태생의 모나리자가 그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루브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회화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 쉴리관 3층, 리슐리외관 3층, 드농관 2층에서 중점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프랑스 회화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화가에는 다비드, 앵그르, 들라크루아, 제리코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까지를 전시 하고 있으며 그 이후의 작품들은 센느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위치한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나폴레옹과 다비드
만약 오늘날 대통령과 국회를 위한 전속 화가가 있다면 어떠할까?

이를테면 그 전속 화가가 국가 행사나 활동 등을 그림 속에 담아낸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요즘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사진 기술이 매우 발달 했지만, 그림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게다가 그림이란 것은 화가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 예컨대, 화가는 그리는 대상의 콤플렉스나 취약점을 가려 줄 수도 있고, 보통 일상의 장면을 꽤나 훌륭한 화면으로 재구성 할 수도 있으니 고객의 입맛대로 그려내기가 가능하다. 루브르에서는 이러한 그림의 면모를 정치적으로 꽤나 잘 활용한 두 사람의 결과물을 만나 볼 수 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통치하며 유럽 대륙을 호령하던 시절 궁정수석 화가가 되어 나폴레옹에게 충성한 화가가 있다. 그가 바로 자크 루이스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1748-1825)다.

다비드는 파리 태생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며 고대작품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앵그르, 그로 등의 제자를 양성한 다비드는 프랑스 회화발전에 큰 공헌을 하며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 했다.

다비드의 작품 성향을 알아보려면 프랑스의 혼란스러웠던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정을 주장한 자코뱅당이 실권을 장악하며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혁명정부가 수립 되었고, 다비드는 자코뱅당의 일원으로 왕당파에 반대표를 던진 인물 중 한명이었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며 프랑스는 국민이 중심이자 평등한 나라의 길로 가는 듯 했으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로 나라는 또 한 번 살얼음판을 걷게 된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도 처형되자 다비드는 같은 당파의 일원으로 감옥살이까지 겪는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총재정부를 유지 했으나 1799년 쿠데타를 일으킨 나폴레옹이 제1통령에 오르면서 실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자리에 오르면서 프랑스는 또 다시 왕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때 공화정을 지향하며 왕을 몰아내기에 앞장섰던 다비드가 아이러니 하게도 궁정 수석 화가로 임명 된 것이다. 예술가에게는 정치적 성향의 변심이 유연하게 허용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다비드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을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힘 있게 그려냈고, 나폴레옹 정부를 이루고 있는 정치적 중심인물들의 초상화도 다수 남겼다. 


◇황제의 대관식
약 200여명의 사람이 그려져 있는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루브르박물관에서 두 번 째로 큰 규모의 작품이다.

표현된 인물들은 하나 같이 격식 있게 옷을 차려 입고 중앙을 향해 시선을 집중 하고 있는데, 이들은 나폴레옹이 무릎을 꿇고 있는 조세핀의 머리위에 왕관을 씌워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804년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의 관을 머리위에 썼다. 그림에서는 황제가 탄생하는 영광스러운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앞서 언급한 바 있듯 그림은 화가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그림의 진실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다비드는 실제 불참석한 사람들까지 그려 넣으며 이 그림을 나폴레옹의 입맛에 맞게 그려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다비드는 원래 나폴레옹이 스스로 왕관을 쓰는 장면을 그리려 했으나 주변의 항의 때문에 나폴레옹이 부인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 주는 장면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교황은 나폴레옹의 바로 뒤에 앉아 있는데 그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으며 마지못해 축복을 내리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교황 비오 7세는 나폴레옹에게 축복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에 나타난 교황은 다비드의 손끝에서 표현된 나폴레옹의 요청인 것이다. 그림과 실제가 다른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그림 뒤편 중간좌석에는 나폴레옹의 어머니인 레티지아 보나파르트가 앉아 있는데, 그녀는 실제로 대관식에 참석 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는 조세핀과 나폴레옹의 가족들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해서라는 설이 유력하다.

권력과 명예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나폴레옹의 운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프랑스를 유럽 대륙의 패권국가로 올려놓았다는 점과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해 나라 안팎의 질서를 잡았다는 점에서는 그의 유능함과 영웅적인 면모를 드높일 만하지만, 여러 나라를 정복하며 전쟁을 벌여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것과 독재정치를 했다는 것은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을만한 국가 원수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한 나폴레옹이 귀향 간 섬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면서 다비드 역시 프랑스에서 추방당하여 브뤼셀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어느 박물관에 가던지 꼭 보아야 할 작품 리스트는 존재 하지만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그 작품들을 다 보지 못했더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물론 작품이 가지고 있는 희소성이나 역사적 가치 등에 의해 그러한 목록이 만들어졌겠지만 어쩌면 그것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는 작품들도 많을 것이며 우리의 시야가 다른 쪽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막기도 한다. 수 십 만점의 작품 중에 마침 오늘 박물관에 방문한 내 눈에 띈 작품, 그리고 그 이름 모를 작품의 매력에 이끌려 그림 앞에서 몇 초든 몇 분이든 머물렀다면 그 그림과 나는 인연인 것이다. 수많은 그림들 중에 얼마 안 되는 내 관람시간을 나도 모르게 어떤 그림 앞에서 사용해 버렸다면 꼭 보아야 할 작품 목록에 있는 그림 보다 내 발목을 붙잡은 그 그림의 힘이 더욱 강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분명 더욱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주소: Rue de Rivoli, 75001 Paris, 프랑스

관람시간: 09:00-18:00(요일마다 상이), 화요일 휴관

입장료: 15유로,18세 이하 무료

홈페이지: https://www.louvre.f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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