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처럼 코로나를 이길 겁니다
질경이처럼 코로나를 이길 겁니다
  • 박재현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 승인 2020.04.2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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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질경이 하면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맛나다는 겁니다. 오뉴월 천왕봉 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을 때입니다. 등산로 주변에 손바닥만 한 질경이들이 지천으로 피었더랬습니다. 한 잎 한 잎 땄지요. 먹을 만치만 따자 싶었습니다. 어서 내려가 이걸 잘 삶아 쌈 싸 먹고 싶었지요. 질경이는 여느 나물들처럼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는 안 됩니다. 끓는 물에 3분에서 5분은 폭 삶아야 합니다. 왜냐구요? 질기니까요. 그래서 질경이 아니던가요. 잘 삶은 질경이 잎새를 찬물에 씻었다가 그걸 노릇노릇 잘 구워진 삼겹살을 싸 드셔보시길 바랍니다. 졸깃한 식감이 환상입니다. 저도 이런 걸 어느 책에서 보았더랬습니다. 그걸 실천한 게지요. 친구들 몇 불러서 그날은 삼겹살 파티를 열었습니다. 모두 이게 뭐냐고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난생처음 이런 맛 난 쌈을 먹었다는 거지요. 참나물이나 미나리 머위 같은 특별한 맛보다는 씹는 식감이 정말 대단하거든요. 아삭거리지는 않지만 고소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잘근잘근 씹히는 맛이 일품이기에 말입니다.

질경이는 길이 나거나 훼손된 곳 주변에 많습니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곳 말이지요. 산길이나 둑길에 흔하지요. 질경이는 그런 곳을 좋아합니다. 길가에 말이지요. 길이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다니면서 자연 길이 생기면 그 옆으로 빛이 들어와 질경이가 들어오는 것이지요.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싹을 틔웠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니지요. 땅속에 질경이 씨앗이 있었던 거지요. 자연에서 산림토양을 종자 은행(Seed Bank)이라고 하지요. 토양이 씨앗을 보관해주는 은행이었던 거지요. 흙 속에 숨어있던 씨앗은 주변이 자기가 살아낼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싹을 틔우는 거지요. 질경이는 빛을 좋아하니까 숲속에서는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데, 사람들의 발길에 길이 만들어지면 빛이 잘 들어오니 그때에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게지요. 두릅나무나 산딸기도 그렇습니다. 산길이 생기고 나면 길가에 산딸기나 두릅나무가 보이지요? 숲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다가 숲이 훼손되고 나지가 되면 얼씨구나 나가야지 싹을 틔우는 거지요.

질경이는 잔디처럼 씨앗이 한 대에 줄줄이 달립니다. 잔디 씨를 보았나요? 기다란 대롱에 매달린 까만 씨앗들. 두 손가락으로 조옥 훑으면 까만 씨앗들이 손바닥에 모이게 되지요. 그것처럼 질경이도 그렇게 씨앗들이 맺히지요. 이름도 다양해요. 갯질경이, 털질경이, 창질경이, 왕질경이 등. 씨앗은 차전자라고 해서 이뇨제로 쓰인답니다.

최문자 시인의 ‘질경이’란 시가 있습니다. ‘정발산 뒷숲길을 산책했다./길바닥에 새파랗게 돋은 질경이가/오늘따라 유난히도 많이 발에 밟혔다./내가 밟고 있는 이 발밑의 너비가/질경이에겐 푸른 우주가 된다./좁아서 더 아픈 우주/나는 질경이의 하늘을 밟은 것이다./이 길이 없었을 때 질경이는/꽃이었다./길이 나고부터 밟아도 되는 풀이 되었다./아마 울면서 풀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 발길에 밟혀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질경이 잎새. 그러나 질경이는 죽지 않습니다. 더욱더 굳건하게 몸을 지키지요. 잎새가 작아지는 겁니다. 작아져야 더 잘 견딜 수 있는 게지요. 표면적을 작게 해 밟힘의 강도나 면적을 줄이는 전략을 쓰는 겁니다. 밟히지 않는 산길 가에서는 잎새도 크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시 숲길에선 잎새도 작습니다.

질경이 하면 질기다는 동사가 생각나지요. 얼마나 질기면 질경이라 할까요. 우리 민족의 성질 같기도 하지요. 은근과 끈기 말이지요.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의 속성 중에서 끈기가 아주 중요하다고 합니다. 끝까지 견딜 수 있는 힘. 그것이 끈기지요. 밟히고 밟혀도 살아내는 힘. 그것이 끈기일 겁니다. 코로나 19가 우리를 그렇게 밟고 밟아도 우리는 끈기 있는 질경이처럼 코로나 19를 이겨내고 꽃이 될 겁니다. 오천 년 역사를 외세에 침입받으면서도 굳건히 지켜낸 질경이 정신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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