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신뢰로 위기 극복
흔들림 없는 신뢰로 위기 극복
  • 임명진
  • 승인 2020.04.3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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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제475주년 탄신일 기념특집 '이순신과 전염병'
3. 무패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한산도생활(충무공십경도 中) 자료제공=해사
한산도생활(충무공십경도 中) 자료제공=해사

 

‘굶던 끝에 병이 나면 반드시 죽습니다’(이충무공전서 중에서)

1593년 8월 왜군의 사정을 상세히 알린 장계에서 이순신은 굶주림과 전염병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당시 조선수군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순신은 1593년 7월께 한산도에 수군 전진기지를 구축했다. 이후 수군전력 증강계획으로 전선 250여 척의 건조에 나섰는데 전선의 건조는 상대적으로 순조로웠지만 흉년과 전염병으로 병력의 손실이 매우 심각했다.

특히 충청과 전라, 경상 3도의 수군 전 병력이 서진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한산도 진영에 집결해 있는 상황에서 감염병이 창궐하자 크게 우려했다.

‘삼도의 수군들이 한 진영에 모여 있으므로 전염병이 크게 번졌나이다’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보낸 장계에는 이 같은 고민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기근마저 극심해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병사들도 예외는 아니었고 하루가 다르게 병력 손실이 커져만 갔다.

그동안 애써 마련한 군선이 유령선이 될 지경이었다. 차디찬 바다에서 추위와 피로에 시달리고 활을 쏘고 노를 저을 기운도 없을 만큼 굶주린 병사들은 전염병에 무기력했다.

전쟁의 와중에 한가로이 치료에만 전념할 수도 없었다. 일본군에게는 난공불락의 이순신 장군이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해군사관학교 충무공 이창섭 연구부장은 “여러 악조건에도 이순신 장군은 포기하지 않고 전염병에 고통 받는 병사들을 구하고자 노력했다. 병에 걸린 병사들을 최대한 후방으로 보내 휴식을 취하게 하고 조정에는 의사 파견을 요청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말했다.

전염병 확산에 따른 동요와 공포는 정상적인 체계를 일순간에 흔들어 놓고 마비시켰다.

중국의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패배한 사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 실패, 십자군 전쟁,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실패 등 숱한 역사의 기록마다 전염병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었을까?

이순신 장군은 병이 스스로 물러나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문제는 면역력이었다.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쉽사리 낫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사실상 조정의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과감하게 국경이나 군사요지에 설치하는 군량을 조달하는 토지인 ‘둔전’과 ‘해로통행첩’ 등을 운영해 스스로 군량미를 조달했다.

또한 물고기를 잡거나 염전을 만들고 소금을 생산해 시장에 내다팔았다. 이를 통해 병사들의 부족한 영양을 보충시키고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 병사들의 넋을 달래는 제사도 지내며 극도로 허약해진 병사들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조치를 취했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병세를 언급한 기록만 180여 회에 이른다. 그 자신도 병에 걸려 쓰러졌지만 전쟁 내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항상 최일선에서 병사들과 함께 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이런 노력들은 최고지휘관이 부하들에게 유대감을 전하는 방식이었고 부하들의 강한 신뢰를 이끌어냈다.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서도 한창 전투중인 병사들이 동요할까봐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이순신 장군의 흔들림 없는 성품에서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무패신화를 이뤄내며 기나긴 전쟁을 마침내 승리로 이끌어 낸 결정적 배경이 아닐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이순신 장군의 이러한 행보는 오늘날에도 많은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두려움을 떨치고 맨몸으로 대구에서 확산 위기를 막은 신임 간호장교 75인을 비롯해 최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민간 의료진들에게 국민들이 찬사를 보내는 같은 이유일 것이다.

신윤호 연구위원은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서로 신뢰할 수 있다면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에게서 우리는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임명진기자 sunpower@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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