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초코파이 신화 이양구 회장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초코파이 신화 이양구 회장
  • 경남일보
  • 승인 2020.05.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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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구 회장

오리온 초코파이는 1974년 첫 출시 이후 지난 2018년까지 한국과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글로벌 합산 누적매출 5조2420억 원을 기록하였다. 2018년 한 해 동안에만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낱개 기준 약 23억 개가 판매된 것으로, 이는 일렬로 세우면 지구 4바퀴 이상을 돌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리요우(好麗友)파이로 현지 제품명을 정하고 마케팅을 펼쳐온 데다가,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초코파이는 중국 고객 추천지수 파이부문 5년 연속 1위, 중국 브랜드 파워 지수 파이부문 3년 연속 1위 등을 기록하였다.

초코파이가 일찍이 중국시장을 겨냥했던 것은 동양제과의 창업자 고 이양구 회장의 탁월한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남(瑞南) 이양구 회장은 1916년 함경남도 함주군의 작은 농가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친이 병사하면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인이 운영하는 식료품 도매상에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정직과 신용’이라는 상도를 배웠고, 그 사장으로부터 “사업은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1938년 4월에 24세의 이양구는 독립을 결심하고 식품도매상인 ‘대양공사’를 시작으로 적잖은 돈을 모으게 된다. 그러나 6.25 전쟁의 참화로 모든 재산을 고스란히 잃고 말았다.

부산으로 피난을 오게 된 이양구는 설탕도매업을 기반으로 재기에 성공하였다. 전시의 특수 경기와 생필품 부족 상황에서 이양구는 부산과 마산, 대구 등지에서 이른바 ‘설탕왕’으로 불렸다. 상당한 부를 축적한 그는 국내 최고의 역사를 지닌 삼척시멘트를 인수하면서 시멘트 사업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1957년에 삼척시멘트를 동양시멘트로 변경한 뒤 시멘트 왕국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멘트 산업에 신규업체들이 대거 진입하면서 그의 사업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양구는 동양시멘트 여파로 사세가 위축되자 제과업계 3대 메이커 가운데 하위에 머물렀던 모기업 동양제과를 재기시키는 일에 매진하였다.

그는 1980년 초에 이미 중국시장을 겨냥해 전북 익산에 대규모 초콜릿 과자 공장을 지었다. 그는 길어도 10년 안에 수교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고, 중국이 개방되면 서해가 아주 큰 길이 될 것이고, 군산항이 가까이 있으니 10억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어마어마한 제과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83년 8월에 이양구는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1986년 여름부터 전북 익산의 동양제과 제 3공장의 초코파이 생산라인이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오리온 초코파이
초코파이의 개발은 이미 1970년대 초, 식품공업협회(현 식품산업협회) 주관으로 미국 등을 순회하던 오리온 연구소 직원들이 한 호텔 카페에서 우유와 함께 나온 초콜릿 코팅 과자를 발견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연구원들은 ‘한국 고유의 맛을 담은 파이를 만들어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약 2년여에 걸친 실험과 개발에 매진했고 1974년 4월 마시멜로의 쫄깃함과 최적의 초코 맛을 유지하는 초코파이를 탄생시킨 것이다.

제품이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려서 없어서 못 팔았다고 한다. 동양제과는 대대적인 광고를 하여 출시 첫해 약 10억 원의 매출액을 올린 것을 비롯하여 1990년까지 국내에서만 약 2450억 원 상당의 제품을 판매해 단일 과자 제품으로는 역대 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3년에는 제과업계 단일제품 사상 최초 누적 매출 1조 원을 달성하였다.

이양구 회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지 10년 후인 1997년에 드디어 초코파이가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진출하여 제과분야의 한류를 일으키는 데 성공하게 된다. 자전거 뒤에 설탕포대를 싣고 시장 통을 누비면서 양구(洋球)‘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지구상의 대양으로 나아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려던 비전을 가졌던 이양구 회장은 1989년 10월에 향년 73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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