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5]오르세미술관
김수현의 박물관 편지[45]오르세미술관
  • 경남일보
  • 승인 2020.05.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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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맛집'이 된 기차역
루브르에서 모나리자와 나폴레옹을 만났지만 무언가 빠뜨린 것 같은 느낌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이것은 아마도 루브르에서 현대 미술의 시초라 여겨지는 인상주의 미술의 대가들을 만나지 못한 탓일 것 이다. 혹시 인상주의라는 표현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면 마네, 모네, 르누아르 같은 화가들을 떠올려보자. 더 나아가 고흐, 고갱, 세잔 등을 여기에 더한다면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질 것 이다. 19세기 무렵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나타난 인상주의 미술은 독보적인 발전을 이루어 프랑스를 예술의 중심지로 이끌었다. 미술애호가라면 이러한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나기 위해 루브르에서 체력을 모두 방전시키지 않는 편이 낫다. 루브르 맞은편에 위치한 미술관이 본격적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한 작품을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는 일방적 관람 말고, 미식가의 도시답게 맛있고 다양한 음식들로 가득한 파리를 한껏 즐긴 후에 산책 하는 듯 한 관람을 추천 하고 싶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파리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보물창고 ‘오르세’를 만나보자.

 
 
◇여유와 낭만 가득한 미술관

마치 영화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 중심에 흐르는 센 강을 사이에 두고 루브르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랑스 대표 미술관이다. 규모면에서는 루브르에 훨씬 못 미치지만 학창시절 미술교과서에서 만나보았던 작품들 웬만큼은 대부분 이곳에서 감상 할 수 있을 만큼 보유하고 있는 작품 컬렉션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루브르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다. 오르세를 찾는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남기게 되는 인기 포토존이 곳곳에 있을 뿐 아니라 미술관의 꼭대기 층에서 감상 할 수 있는 파리 시내의 전망도 어두운 조명아래 액자 안에만 줄곧 갇혀 있던 우리의 눈과 마음에 잠깐의 휴식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루브르와 마찬가지로 오르세에서도 꼭 보아야 할 작품 목록이 존재한다. 루브르와 비교했을 때, 규모적으로 작다 뿐이지 다른 미술관에 견주면 이 곳 역시 어마어마한 수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미술관에 속하므로 슬쩍 둘러보기 좋은 작은 갤러리를 상상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내 집 거실에도 한 점 걸어 놓고 싶을 만큼 그림에서 맛 볼 수 있는 여러 화가들의 개성 넘치는 색채와 기법들의 향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르세에 흠뻑 취하게 될 것이다.

 
 
◇기차역에서 미술관이 되기까지

오르세가 다른 미술관들과 다르게 유달리 특별한 매력을 뿜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미술관은 원래 승객들을 싣고 나르던 기차역이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가 열린 해에 맞춰 완공 된 오르세역은 1939년 까지 프랑스 남서부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위한 기차역에 불과했다. 역의 짧은 플랫폼이 객실 칸이 많은 기차에 적합하지 않게 되자 2차 세계 대전 때는 우편교환국으로써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후 더 이상 기차역으로 쓰이지 않게 된 오르세역은 호텔로 변신 하게 된다. 오르세는 1970년 완전히 철거 될 뻔 했지만 고전과 현대를 이어주는 새로운 미술관의 탄생을 열렬히 지지한 프랑스 박물관 협회 덕분에 1986년부터 대중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미술관 안팎의 큼지막한 시계 들은 관람객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역할이 아니라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에게 그 기능을 다 했던 것이다. 역사를 허물어 버리고 박물관을 위한 건물이 새롭게 건립 되었더라면 신식 건축물이 주는 현대적인 멋도 있었겠지만,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묵은 때와 분위기는 그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 미술관에 더욱 애정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오르세 에서는 1850년대부터 1914년까지의 작품들을 위주로 전시하고 있으며 1850년대 이전의 작품들은 루브르에서, 1914년 이후의 예술작품들은 퐁피두센터에서 전시하고 있다. 파리에 있는 예술작품들은 시대별로 각각 다른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시대를 중점적으로 둘러보기에는 유리하지만, 시기별로 이어서 감상하고 싶다면 어느 한 곳을 찍어서 관람하기가 사실상 불가능 하다. 이쯤 되니 파리에 맛집이 많은 이유가 미술관 관람객들의 지친 다리와 체력을 보충해 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르세의 스타 ‘만종’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오르세의 ‘보석’을 한 점만 꼽아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19세기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그려내는 것을 넘어서 그림에 감정을 담아내기도 했고 심지어는 점차 형태가 파괴되는 추상적 표현을 쫓기도 했다. 즉, 그림을 마주할 때에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따지는 일이 의미 없어 졌다는 뜻으로 해석 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오르세의 작품들을 만날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유독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아 전시실을 가득 메우게 만드는 작품이 존재한다. 오르세의 간판 스타급으로 알려진 밀레의 ‘만종’은 미술수집가였던 한 미국인의 주문으로 탄생했다. 만종 외에도 ‘씨뿌리는 사람’,‘이삭줍기’등을 그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작품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농민들의 삶을 캔버스에 옮긴 덕분에 우리에게는 농민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밀레는 프랑스 시골 마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농촌풍경에 익숙했으며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돕는 등 그가 그린 농촌의 풍경들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연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다. 밀레는 바르비종파(Barbizon)를 창시한 화가로 루소,코로, 뒤프레, 도비니 등과 함께 프랑스 교외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자연주의를 지향하고 자연과의 교감을 그림에 나타냈다.

본래 만종을 구매하기로 했던 이에게 작품이 팔리지 못하면서 밀레는 이 그림의 원래 제목이었던 ‘감자의 수확을 기도하는 사람들’ 을 ‘만종’으로 수정했다. 저녁시간 때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뜻하는 제목은 두 농부가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듣고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 채 기도를 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해준다. 밀레는 이 그림을 두고 자신이 어린 시절, 교회에서 저녁 종이 울리던 시간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도록 했던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렸다고 설명했다.

작품속의 두 주인공 곁으로는 감자가 든 바구니와 방금까지 땅을 일구다가 내려놓은 듯 한 쇠스랑이 세워져있다.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유난히 이 그림에 애착을 가졌음과 동시에 그림이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닌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하는 그림 이었을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엑스레이 선을 통해 그림을 분석해본 결과 자그마한 관의 형태와 흡사한 것을 그렸다가 지운 흔적이 발견되며 달리의 의견에 더욱 무게가 실렸다.

루소를 포함한 다른 자연주의 화가들은 자연의 풍경과 낭만을 표현하며 서정적 화풍을 추구했던 반면 밀레는 실제 농촌의 삶을 관찰한 것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이 때문에 밀레의 작품은 당시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일부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밀레가 이 그림을 통해 농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으려고 했는지 하층민들의 고된 일상을 표현하며 사회를 고발하고 싶었는지 그 해답은 밀레만이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밀레의 그림을 통해 일상이 주는 소중함과 정직한 노동으로 얻은 결과물에 대해 감사 할 줄 아는 농민들의 순수함에 숙연해짐을 느낄 것이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저 멀리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주소: 1 Rue de la L?gion d‘Honneur, 75007 Paris, 프랑스

관람시간: 화~일 9:30~18:00(월요일 휴관)

입장료: 14유로, 18세 이하 무료

홈페이지: https://www.musee-orsay.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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