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카네이션
오월의 카네이션
  • 경남일보
  • 승인 2020.05.10 16: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정란 (수필가)
 

어버이날이면 꽃을 샀다. 붉은 카네이션은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왼쪽 가슴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고향 마을 면사무소에서는 초등학교 강당을 빌려 어버이날 경로잔치를 열어주곤 했다. 학교 강당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면 막걸리 한 잔으로 얼큰해진 얼굴은 반가움으로 더욱 붉게 물들었다.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흥이 돋아 어머니는 평소 김매던 밭에서 땀을 훔치며 읊조리던 ‘청산리 벽계수야’를 구수하게 읊었다.

어머니의 빈 집에는 붉은 카네이션이 쓸쓸하게 방안을 지키고 있다. 현관문에서 정면으로 잘 보이는 찬장의 둘째 칸이다. 어머니는 카네이션을 귀하게 여겼다. 어버이날이 지나면 자식들 얼굴을 바라보듯 찬장 속에 두고두고 보았다. 먼지라도 묻을까 봐 투명 케이스에 넣어서 소중하게 간수하였으니, 주인이 떠났어도 묵묵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를 흔들어보고 살며시 쓰다듬어 본다. 어버이날 가슴에 활짝 핀 카네이션 한 송이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 당당하고 행복해했던 어머니.

오래전 어버이날, 아이들이 선물한 편지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다. 분홍색 카드는 아이 손바닥만큼 작아 웃음을 머금게 했다. 초록 색종이에 연필로 그린 카네이션 한 송이가 소박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았다. 어찌나 간소하던지.

“엄마 아빠, 키워줘서 고맙습니다. 커서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

아이들 선물은 게 한 마리가 걸어 나오듯 삐뚤삐뚤한 글씨로 부모님께 효도하겠다고 했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아이들의 편지가 신기하게 떠오른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느닷없이 반가움으로 찾아든다. 단순한 아이들의 편지에서 친정어머니의 모습을 떠 올린다. 우리 자식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 반만이라도 흉내 낼 수 있을까. 어머니는 주야로 자식들이 건강하게 자라주길 바라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살아가기를 기도하셨다. 어른이 된 아들딸의 다정한 모습을 대하며 코흘리개 때의 손바닥 편지가 든든하고 소중하다.

아들과 함께 꽃시장에 들른다. 오월 어버이날을 맞아 사방에 카네이션이다. 활짝 핀 꽃을 원 없이 구경하지만 돌아서면 그리운 얼굴이 비친다. 조화가 있는 꽃 가게 앞에서 눈길을 멈춘다. 흰색과 옅은 분홍색 꽃송이들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올해는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으로 하얀 카네이션을 고른다. 꽃시장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카네이션 물결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차창 밖으로 가로수 길 이팝나무 연두색 이파리가 하늘거린다.

허정란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