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잊은 영웅 의사(義士) 원심창
조국이 잊은 영웅 의사(義士) 원심창
  • 경남일보
  • 승인 2020.05.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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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 (서울대학교재외동포교육 자문위원장)
 

지난달 서울 프레스센타에서 서울대학교주최로 국회에서 8월 13일 개최 예정인 ‘재일동포의 모국사랑’이란 주제로 포럼을 협의하던 중에 통일일보 이민호 서울지사장으로부터 해외 3대 독립의거의 주역인 의사 원심창을 취재한 내용을 듣고 민족교육을 담당했던 자로서 본인 스스로 느낀바가 있어서 이민호 지사장님의 양해를 구하고 조국이 잊은 영웅 의사 원심창을 소개 하고자 한다.

일본 나가사키는 원자폭탄을 맞은 도시다. 그곳에 가면 히로시마 원폭돔과 마찬가지로 ‘평화’ 글자가 붙어있는 공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곳에 우리역사의 한 자락, 애국지사의 한(恨)이 서려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일제강점기 때 한 독립운동가가 바로 그곳, 나가사키의 차디찬 독방감옥에 홀로 갇혀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원심창(元心昌, 1906~1971) 의사다. 원 의사는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이 행한 해외 3대 독립의거로 꼽히는 ‘상하이 육삼정의거’의 주도자였다. 재판에서 1심 사형, 최종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언도받았다. 장장 15년간을 일제가 만든 철창 안에 갇혀서 해방을 맞이한 민족투사 원심창. 사후에 동지와 유지들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의사(義士)로 추존됐다. 100년 재일동포 역사에서 의사칭호를 받은 이는 원 의사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는 원심창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게 다가온다. 그건 의사가 생애 대부분을 지낸 일본에 사는 동포들, 그가 창립한 재일거류민단의 간부들 역시 마찬가지다. 조국이 철저하게 잊은 인물로 전락한 듯하다. 어찌 조국은 이리 매정할 수 있는가. 한국인의 무관심은 잘못이 아닌가. 무슨 연유로 이렇게 조명 받지 못하는 것일까. 원심창 취재는 그런 의문을 품으며 시작했다고 한다. 꼬인 실타래를 푸는 심정으로 한 사람의 애국지사가 살아온 삶의 족적을 찾아가 보자.

그럼 원심창 의사는 어쩌다가 나가사키감옥에 갇히게 된 것일까? 때는 1933년 3월 17일 상하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 의사는 이날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저격하기 위해 상하이 무창로에 있는 일본 요리집 ‘육삼정(六三亭)’ 근방에서 대기한다. 연회를 마치고 나오는 아리요시를 처단할 목적이었다. 원 의사는 이날 아리요시가 육삼정에서 중국의 권력자들을 친일파로 포섭 매수한다는 정보를 사전 입수, 동지들과 함께 거사를 기획했다. 하지만 의거는 무산되고 만다. 백정기(白貞基), 이강훈(李康勳) 2명의 동지와 함께 실행하기 직전에 일제경찰의 습격을 받은 것이다. 당시 세 사람은 도시락 폭탄 1개, 수류탄 4개, 권총 2정을 소지한 채였다. 육삼정 의거 때의 폭탄은 윤봉길 의사가 홍커우 공원에서 쓴 것과 동일 모델 이었다. 예심은 상하이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일제당국은 원심창의 동지인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이 자기들을 보복 공격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해 7월 10일 3명의 의거자들은 포승줄에 묶인 채 나가사키로 압송된다. 그때 일본경찰 4명이 호송했으며, 상하이항구에서 나가사키마루(長崎丸)호 이등실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일본으로 압송된 원 의사가 수감된 데가 바로 지금의 나가사키평화공원, 당시 나가사키형무소 우라카미 형무지소다.

나가사끼 형무소에서 가고시마 형무소로 이감되었는데 무기징역형 이었으나,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어 1945년 10월11일 출옥하여 자유의 몸이 되어 민족운동을 같이한 박열선생과 같이 재일거류민단을 창단하였고 1959년 1월 1일 재일동포를 위한 민족 신문인 통일일보를 이영근 선생과 같이 창간하였다.

창간호에 즈음하여 재일동포에게 고한다 “조국의 평화통일 완수를 위하여 민족의 총력을 기울이자”고 했으며 원 의사는 독립은 통일이 완수 되어야 독립이 된다고 했으며 통일운동에 참가하게 된다.

11대 재일거류민단 단장때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한국전쟁에 파병할 학도병인 청년 학생을 모집하여 파병했으며, 12대 단장일때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자를 돕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광형 (서울대학교재외동포교육 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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