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 경남일보
  • 승인 2020.05.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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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 (하동주민공정여행 놀루와(협)대표)
조문환
조문환


눈물을 참 잘 흘리는 분이 있다. 연설을 하다가도, 직원들에게 훈시를 하다가도, 강의를 하다가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곤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쪽처럼 강직하고 물 불 안 가리고, 업무에는 저돌적인 분인데 의외로 마음은 여리고 약하다.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강직한 분이지만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여리다. 그러니 강함과 여림의 차이는 종이 반의 반 장도 아닐 수 있다.


센 척 하는 사람은 의외로 약함을 가리기 위해 가장 하는 노력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도 눈물이 제법 있는 사람이다. 때로는 냉철하고 냉혈인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느 한 쪽 구석에는 눈물샘이 제법 흥건하게 고여 있지 싶다. 사람들의 애틋한 정, 순수성이 내재된 상황 속에서 내 눈물샘은 잘 터진다. 최근 어른들 자서전교실을 마치는 졸업식에서 눈물을 참기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있다. 아, 눈물을 보이는 것은 헤픈 감정일 수 있다는 자책감에 이를 악물었다.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라는 사람이 있다. 내한공연 중에 그녀는 오열했다. 연주가 중단됐다. 베토벤 피아노소타나 29번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코로나로 인하여 자칫 공연 자체가 취소될 뻔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공연이 성사됐고 그녀도, 900명이 넘는 관객도 모두 마스크를 쓴 채 공연에 참가했다. 그녀의 공연 사진 한 장을 봤다. 눈은 감겨져 있고 고개는 약간 뒤로 젖혀져 있으며 얼굴은 붉게 물들어져 있다. 마치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 하나를 달고 있어 보였다. 결국 그녀는 그 대가로 앙코르만 1시간 넘게 선사했다.

아침 산책길에 그녀가 연주하는 베토벤 달빛소나타를 들었다. 수백 번 들었던 이 곡이 새롭게 들려왔다. 그녀의 연주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관객도 소리를 죽이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 피아노 건반위에 엎드려 흐느끼는 연주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후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지고, 그녀는 가만히 일어나 관객을 향해 목례를 한 후 눈물만큼이나 강렬한 달빛소나타를 연주했다. 구름을 넘기도, 시냇물을 건너기도, 산들바람을 타고 들판을 거닐 기도, 폭풍을 불어 올리고, 천둥번개가 치기도... 결국은 정적으로 접어드는 달빛소나타 3악장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 속에 마쳤다.

그녀가 눈물로 연주를 중단했을 때 그날의 연주는 그녀가 상상하지 못했던, 관객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최고의 연주를 한 것이다. 그 이상 더 훌륭한 연주는 할 수 없고 기대 할 수 없는 것이다. 눈물이 연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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