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0)
강희근 교수의 경남문단, 그 뒤안길(510)
  • 경남일보
  • 승인 2020.05.1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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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지역문학 연구가요 시인인 박태일 교수 정년하다(2)
‘박태일의 시살이 배움살이’는 시집 풀이, 작품 작가론, 서평, 단평, 시읽기, 대담 좌담 순으로 엮여져 있다. 시집 풀이를 한 이로는 황동규, 김주연, 하응백, 오형엽, 이경수, 장철환 등의 이름이 보이고 작품 작가론을 쓴 이로는 남진우, 남송우, 김종회, 구모룡, 권혁웅, 이문재, 손진은 등의 이름이 있다. 단평에는 윤재근, 김용직, 차한수, 이동순, 김재홍, 홍신선, 강은교, 김윤식, 송용구, 신진 등이 보이고, 시 읽기에는 이숭원, 장석남, 손택수,이상국, 김광규 등이 보인다. 이런 이름들은 국내 최고의 필진에 해당되는 면면이다.

시집 풀이에서 황동규는 <시의 뿌리>라는 제목으로 시세계를 추적했다. 황교수는 결론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성복, 황지우 등의 파격적인 시가 돋보이는 흐름으로 흐르는 이 시기에 박태일의 노래에 뿌리박은 시들을 읽는 것은 독특한 맛을 준다. 다시 반복하지만 노래는 시의 뿌리인 것이다. 물론 그 어느 문화현상도 뿌리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 나무는 줄기요 잎이다. 그리고 물론 줄기나 잎을 보고 뿌리의 상태를 점칠 수도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여 지금 활력을 보여주고 있는 시 자체가 뿌리의 건강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뿌리 자체의 존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확인 대상 가운데 박태일의 시가 있는 것이다.” 첫시집 ‘그리운 주막’에서의 시가 뿌리인 노래를 환기시켜 주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김주연 평론가는 박태일의 시를 <농촌시 전원시>라는 제목으로 쓰고 있다. 한 대목을 잘라와 보자. “더디 넘는/ 봉산도 재넘이/ 오라버니 치상길/ 치마폭에 감겨 젖는 소발굽 요령소리며/ 사철쭉 덤불 아래/ 돌귀만 차도/ 산비 날아가는 유월도 초사흘” <유월>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얼마나 산뜻한가. 이러한 산뜻함은 치상길, 요령소리, 산제비 등의 사물을 즉물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유월이라는 계절의 객관화가 성공함에 따라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때 명사로 끝나는 종결어미 처리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김주연은 사물의 즉물적 객관화를 강조하고 있고 그것이 아마도 시의 인상을 단아하게 만드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실 이 시는 대체로 이른바 7.5조 가락을 깔고 있는 시로 읽힌다. 그래서 김소월풍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전혀 김소월적으로 뒷걸음을 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데 시적 비밀이 있다. 시의 마디가 경제적인 언어 죄기에 능숙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시는 첫줄과 둘째줄로 넘어가면서 승부가 나는 것같이 보인다. ‘더디 넘는/ 봉산도 재넘이’에서 ‘더디’와 ‘봉산도’가 깔끔하게 연결되어 이 맥락 속에 언어의 비축된 기량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응백은 박태일 시인의 시집 ‘약쑥 개쑥’ 해설의 마무리 부분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썼다. “이땅에 백석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일제의 파쇼적 탄압이 가열되던 1930년대 말 저 도도한 북도의 방언으로 전설과 풍광과 풍물을 노래했다. 그의 시에서 주위의 사물과 전래의 모든 고유한 것은 모두 동질의 성격을 가진다. 그는 과거로의 회귀와 조선적인 것의 탐구를 통해 민족 동일성을 확인하여 곤궁한 시대를 견뎌냈다. 박태일의 시는 어떤가? 마찬가지로 이웃과의 친화에 노력한다. (중략) 백석의 시가 민족적 동일감을 확인하여 일제의 민족 말살에 맞섰다면 박태일의 주객 일체의 서정시는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것은 아마도 물신화되어 가는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저항과 박래품인 피싸리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김종회 평론가는 <서정시의 서사적 발화>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박태일은 지역적 전통성의 기반을 가지고 있던 그의 시는 초기 이래의 4.4조 운율을 확대하여 근대 이전 판소리나 평민가사의 유희성 언어 용법을 차용함으로써 강력한 풍자적 지평을 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지역 기반은 역사적 공간으로 전환되고 그의 비극적 세계관은 사실에 빗대어 한결 높아진 목청으로 현실의 부당한 면모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점에서 필자는 박태일의 시가 갖는 일반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시가 내장하는 진폭의 음영이 리듬 너머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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