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액자 속의 아버지
[경일춘추]액자 속의 아버지
  • 경남일보
  • 승인 2020.05.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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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란 수필가

 
아버지는 전설 같은 존재였다. 네 살배기 아이의 입에 아버지라는 말이 채 익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큰방 문 위에는 아버지의 사진이 항상 걸려 있었다. 어머니는 사진을 올려다보며 수시로 말을 걸며 속 답답한 일이 있으면 하소연도 하였다. 바로 옆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대하였기에 우리에게 익숙했다.

액자 속 아버지는 흰 와이셔츠의 양복 차림으로 미소를 머금고 내려다보고 있다. 약간 마른 체격에 어깨를 곧게 펴고 있는 인자한 모습이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셨다. 돌아가시는 날도 아침 일찍 학교 사택 채소밭에서 호밋자루를 던져둔 채 떠나셨다.

육 남매 중 셋째 딸인 나는 아버지의 귀여움을 가장 많이 받았다. 어머니 젖이 모자라 아버지가 손수 끓여주신 우유를 먹고 자랐다. 밤새 배가 고프면 한밤중에도 일어나 끓여둔 우유를 혼자 홀짝이며 마셨다. 아버지가 사다 주는 박하사탕을 무척 좋아했는데 사탕 심부름은 작은언니가 도맡아 했다. 언니가 한 알도 축내지 않고 가져오면 나 혼자 다 먹던 철없던 때였다.

어머니는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심심하면 내가 아버지 딸인지, 엄마 딸인지 그 의중을 묻고는 했다. 어린 나는 사명감이라도 가진 듯 당연히 아버지 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나를 꼭 껴안고 흐뭇해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연결 고리를 어린 딸을 통해 확인하며 위로를 받았다.

기억의 창고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자를 만난다. 스승의 날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는 신기한 일을 겪었다고 달뜬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희한한 거라, 웬 여자가 찾아와서 너희 아버지 사진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거라.”

그녀는 아버지의 제자였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고 싶어 아버지의 고향을 물어물어 사십여 년 만에 찾아왔다. 소녀는 초등학교 때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마침 담임 선생님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사는 게 바빠 그때의 은공을 못 갚고 인제 와서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다고. 사진을 보니 하나도 안 변했다고 울고 또 울었다. 사십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스승의 언저리라도 느끼고 싶어 잊을 수 없어 찾아왔던 제자였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액자 속 아버지를 떠올리며 빛처럼 왔다가 사라져 간 그녀를 생각하게 된다. 어린 여학생의 아름다운 마음이 하늘에 계신 스승에게 전해졌으리라. 오월, 반짝이는 기억들은 초록 물결이 되어 액자 속에서 팔랑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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