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볶음
낙지볶음
  • 경남일보
  • 승인 2020.05.1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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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진주문협 사무간사)
황금연휴 동안 아들 내외가 내려왔다. 아내에겐 아들만큼 귀한 손님이 없다. 장을 보러 가자는 닦달에 재래시장 어물전을 찾았다. 커다란 고무대야에 낙지들이 오글거린다. 대야를 움켜잡은 다리 힘이 엔간하다.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 날인 줄 아는가 보다. 망설임 없이 가격흥정이다. 오랜만에 저녁 밥상이 진수성찬이다. 소고기 전골에 매콤한 낙지볶음까지. 그중에 내 눈을 끄는 것은 단연 낙지볶음이다.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매콤한 음식이면 무조건 맛있게 먹는다. 기억해보면 어머니가 매운 음식을 좋아해 우리 집 음식은 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가난한 종갓집 큰며느리로 시집와 제사는 물론이고 시누이와 시동생까지 거처하느라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 고달픔을 매운맛으로 견뎌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 어머니를 닮은 것인지 나도 사는 것이 힘들 때면 매운맛을 찾는 버릇이 있다. 결혼하고 보니 아내도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 이래저래 내 위장은 매운맛에 시달려 위염을 앓은 지 오래다.

한데, 오늘 저녁 반찬에 빨간 낙지볶음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식욕을 지배하는 뇌와 안전을 지배하는 뇌가 갈등을 일으킨다. 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한입 가득 떠먹고 만다. 어라, 그런데 하나도 맵지 않다. 아내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 그랬다. 아내는 맵지 않은 고춧가루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사이 모든 음식에서 매운맛이 줄어든 것 같다. 무심한 줄 알았던 아내의 사랑을 느낀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데, 마침 텔레비전에서 낙지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낙지가 없어져 버렸어, 갯벌이 다 죽은 것 같아.” 인터뷰하는 어민의 볼멘 목소리에 한숨이 섞여 있다. 갯벌의 대표 어종인 낙지가 어획량이 급감했다는 소식이다. 낙지 개체 수 감소가 심각해지자 해양수산부에서 산란기 동안 지역별로 금어기를 지정 고시하고 있다. 낙지잡이에 금어기를 지정하기 시작한 것은 몇 해 되지 않았지만 효과가 궁금하다.

날씨는 갈수록 이상 현상을 보이고, 갯벌은 무분별한 개발로 오염되어 낙지 수확은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산란기 동안 금어기로 지정하면 어민들은 당장 눈앞의 수입은 줄어든다. 어민들이 수입 감소를 감수하기로 한 만큼 산란이 활발히 이루어져 낙지 개체가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낙지볶음에 소주 한잔하면서 어민들도 웃고, 서민들도 웃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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